지식정보화사회에서 창의력을 개발하는 방법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토지나 자본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개발된다. 이 '재미'가 근면, 성실을 뛰어 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과거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는 망했듯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개념적으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지식은 뭐고, 정보는 또 무엇을 의미할까?
'정보'는 인간이 세상에 일어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사물들 중에서 의미를 부여한 최소한의 단위들이다. 안중근이란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사건은 수없이 많은 살인 사건들 중에서 의미 있게 기억된다.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 있게 기억된다고 해서 그 정보가 곧바로 지식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 사건이 의미 있는 정보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 사건이 한국에서는 '안중근 의사(義士)가 조선 침략의 원흉을 응징한 사건'이 되고,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바로 그 맥락이다. 그리고 이렇게 맥락에 의해 해석 가능한 구체적 의미가 부여될 때, '정보'는 비로소 '지식'이 된다. 결국 정보는 그것이 속한 지식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대로 '지식'은 정보가 사회문화적 맥락, 혹은 이론적 맥락에 의해 구체적 의미가 부여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이라는 정보와 '안중근은 한국인', 혹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이라는 정보가 서로 연관되면서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사건'이라는 지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형성된 지식은 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는 정보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보는 의미를 수용하는 가장 최소한의 인식단위이고, 지식은 이 정보와 정보들 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지식의 생산은 어떻게 가능한가? 새로운 지식은 기존의 정보와 정보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이제 창의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자면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1)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2)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비로소 창의성에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은 이전에 다 있었던 것들이다. 단지 그것들이 속한 맥락이 바뀌었을 뿐이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들은 근면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들은 놀이를 통해 아주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새롭게 느낀다. 바로 이 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런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의 힘은 바로 '재미'다.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창의적인 '노는 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안다. 뭐가 재미있고, 즐겁고, 기쁜지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재미와 기쁨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은 그 국민들이 행복과 기쁨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군사력, 경제력보다도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가에 의해 결정된다. 21세기 복지국가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고, 우울하여 모든 것이 불만인 국민들이 추구하는 재미란 갈수록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뿐이다. 즐긴다고 하면 폭탄주 이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고, 시골 논두렁 사이에도 러브호텔이 줄줄이 들어서는 나라의 국민들이 진정 행복하고 즐겁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잘 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창의성도 꽃 피울 수 있고, 국가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50살 먹은 사람의 창의력은 5살 어린이의 창의력의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가 창의적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정보의 재조합을 통한 '낯설게 하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할 생각 이외에는 어떠한 상상도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빗자루라는 정보의 맥락이 청소도구의 맥락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맥락으로 바뀌면서 빗자루의 '낯설게 하기'가 일어난다.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재미'다. 부모들은 이렇게 놀면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빗자루를 빼앗고,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그 부모들과 똑 같이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앞에서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는 이들을 절대 용납 못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그 부모에 그 자식인 법이다.
새로운 지식이란 지구의 아무도 모르는 어느 구석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찾아낸 결과가 절대 아니다. 새로운 지식은
이미 있던 정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창의성이 없다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보를 조직화해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론을 구성해내는 연습이 반복되면 누구나 얼마든지 창의적이 될 수 있다. 21세기형 천재는 엄청난 통찰력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 천재는 세상이 아주 단순할 때나 가능했다. 미래의 천재는 데이터베이스상의 정보를 재미있게 만지작거리다가 황당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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