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리은행 창구 여직원 박아무개씨는 최근 지점장한테서 입출금 창구 계약직원들을 모두 ‘매스마케팅 직군’으로 바꾸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고심 끝에 서명했지만, 직군제가 되면 고용안정이나 처우 개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은행들이 영업점 창구 여직원 등 기간제 노동자(비정규직)들을 따로 떼어내 독자적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단독 직군제’를 도입하고 있다.
직군제가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신분은 정규직에 가까워지지만, 대우는 비정규직 수준에 머물게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반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노동 계급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은행들이 다른 산업보다 먼저 단독 직군제를 도입하는 것은 비용 부담 탓이다. 은행 창구 직원은 숙련이 필요한데,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년 이상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는 정규직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기존의 기간제 행원들을 모두 매스마케팅 직군, 고객만족 직군, 사무지원 직군 등 세 직군으로 전환했다.
영업점에서 예금출납 등을 맡은 창구 여직원 1800여명은 매스마케팅 직군, 콜센터 직원은 고객만족 직군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정규직의 50~60% 수준인 임금을 한꺼번에 올리는 것은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직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도 곧 직군제를 도입한다. 국민은행 인사정책 담당자는 3일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연스럽게 직군제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인사정책 관계자도 “이른 시일 안에 직군제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단독 직군제는 고용은 안정되지만 임금이 정규직의 50~60%에 불과해 저임금 구조는 굳어진다. 노동계에선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핵심인 ‘차별
철폐’ 조항을 무력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은 동일노동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차별철폐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단독 직군제로
나눠버리면 직군끼리 완전히 단절돼 노동조건을 비교할 상대가 없어진다.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지도위원인 김철희 노무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불안과 임금차별이라는 두 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단독 직군제
아래선 임금차별은 그대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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