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 내에서 검토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우리금융지주 인수 논의는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발상이다. 이 문제는 변재진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연금이 우리금융 인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욕을 밝히면서 표면화했다. 그는 또 투자 방식에서도 재무적 투자자, 전략적 투자자 모두일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이같은 변장관의 발언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우리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주식을 99.9% 이상 소유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회사는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72.9%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금융지주회사법상 예금보험공사는 내년 3월 말까지 우리금융지주를 매각하도록 되어 있어 시일이 촉박한 상황이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팔지 않겠다는 경제적 내셔널리즘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2004년 도입한 PEF(private equity fund)제도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절름발이가 된 것도 문제를 꼬이게 했다.

재정경제부가 당초 의도한 PEF제도는 은행업을 비롯한 주요 기간산업을 민영화할 때 국내 자금 부족으로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PEF는 합자회사 형태로 30인 이내 무한책임사원인 GP(general partner)와 유한책임사원인 LP(limited partner)로 구성된다. GP는 펀드를 설정ㆍ운영하는 주체고 LP는 일반투자자다. 30인 이내 투자자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대형 사모펀드를 조성하자는 의미는 산업자본 참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또다시 강조되면서 산업자본의 GP 참여가 배제됐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다 보니 국민연금의 우리금융 인수론이 정부 일각에서 궁여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같다. 잔꾀를 부리고 있는 셈인데 문제점이 많은 하책이다.

첫째, 우리금융 매각을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기본원칙을 정한 뒤 매각을 추진해야 하는데 사겠다는 곳부터 정해서 거꾸로 일을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투명성에도 어긋난다.

둘째, 우리금융 매각 기본 원칙을 정할 때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되어왔던 금산분리 원칙 등 금융정책 기본 골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국내 금융산업은 외환위기 10년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금융 관련 법규는 아직도 후진적 규제투성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고 아시아 금융허브를 표방하는 마당에 경제적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토종은행론과 금산분리 원칙을 아직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을지 재고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외국인 참여를 허용하고 국내 산업자본 참여를 막게 되면 제2, 제3의 론스타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기 어렵다면 국회가 협조해서 당초 행정부 계획대로 PEF에 산업자본을 모아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리은행을 인수토록 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셋째, 정부가 우리금융을 파는 목적이 민영화라고 한다면 국민연금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것은 주머니만 바꿔차는 것이다. 민영화가 아니다. 지배구조가 기존 '재경부-예금보험공사-우리금융'에서 '보건복지부-국민연금-우리금융'으로 바뀌는 데 불과하다. 소관 부처만 바뀌고 우리금융은 여전히 국책은행으로 남아 있게 된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상황인데 우리은행을 계속해서 국책은행으로 존속시킬 필요가 있을까. 밥그릇을 탐내는 관리들의 집요한 욕심을 드러낸 것 같기도 해 씁쓰레하다. 정부와 금융계에 오래 몸을 담은 A씨는 국민연금 인수설에 대해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증권사 대표인 P씨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며 "지배구조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은행을 망가지게 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넷째, 국민연금이 우리금융을 인수하기 위해선 국민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도 환골탈태해야 한다. 신상품 투자에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하고 활황 증시에 채권이나 들고 앉아 있는 비전문가적인 현행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재경부 산하 때보다 더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또 나쁜 선례를 남기면서 금융계 풍토를 흐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릴 뻗어야지, 급하다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편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장용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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