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펀드설명은 우리가 했는데 가입은 딴 증권사에서 하더라고요." (A증권사 직원)

"문은 활짝 열어놨는데 인기펀드를 납품하겠다는 운용사가 없어요. 할인매장에 '신라면'이 없는 꼴이죠." (B증권사 직원)

모든 펀드를 개방형으로 팔겠다고 선언한 금융회사들이 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영어로는 '오픈 아키텍처'라고 부르는 개방형 펀드판매 구조.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착된 시스템이다.

계열사 상품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펀드가 진열돼 있으니 성향에 맞게 펀드를 살 수 있다. '무조건 우리 펀드가 좋다'는 식이 아니라 '우리 계열사 펀드는 아니더라도 고객 성향에는 이 펀드가 맞다'는 식이니 얼마나 발전된 방식인가. 유통혁신 때문에 물건값(펀드 수수료)도 싸져 고객에게도 이익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택한 금융회사들의 처지는 참 딱하다. 특히 한국만의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실제로 D증권 직원 A씨는 고객과 상담 끝에 미래에셋의 C상품을 추천했다. 그러나 고객은 설명을 들은 다음 미래에셋을 찾아가 C상품을 가입했다. 최근 D사 내부에서는 '오픈 아키텍처' 포기 여론마저 일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온라인 펀드몰을 만든 모 증권사는 인기펀드를 파는 계약을 하려다가 막판에 무산됐다. 운용사가 모회사 눈치를 보고 '온라인에 팔았다간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며 튕긴 사례다.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금융사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는 금융사들에 밀리고 당하는데 두고 봐야만 하는 현실이다.

결론은 고객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적금 찾는데 '요즘 주가 뜨는데 우리 회사 펀드 가입하세요'라는 말에 혹해선 안된다. 성실하게 고객 입맛에 맞는 상품을 찾아주는 곳을 알아보자.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습관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서비스 품질 경쟁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 피해는 고객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 같다.

펀드도 공부하고 투자하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됐으면 좋겠다.

[증권부 = 신현규 기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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