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대기업의 성공 비결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있었다. 역대 대통령의 눈에 들면 좋은 공기업이나 땅을 싼값에 넘겨 받았고, 시장에서 독점을 보장 받아 큰 돈을 벌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벌 그룹에 들어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는 것이었다. 현대는 중화학 합리화 조치로 승용차 생산 독점권을 받았고, SK는 공기업인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불하 받았다. 롯데는 서울 소공동 노른자위 땅을 넘겨받아 이곳에 호텔과 백화점을 지어 돈을 벌었다.

물론 실패한 정경유착도 있었다. 한보를 비롯한 숱한 기업가들은 오히려 구속되거나 기업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정경유착 성공 모델에 집착하다 보니, 기업인들은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가는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기업은 정권에 밉보이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대통령 주재 회의에 불참한 뒤 ‘괘씸죄’에 걸려 그룹이 산산조각 나는 불행을 겪었다. LG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이른바 ‘빅딜’이라는 이름의 압력에 밀려 반도체 사업을 통째로 현대에 빼앗겼다. 반면에 두산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 그룹이 재기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일단 성공한 대기업들은 신생 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독점 체제를 유지한다.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는 망하지 않을 정도의 돈만 주고, 신생기업이 도전하면 막강한 자금과 인맥을 동원, 싹을 완전히 밟아버린다.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도 재벌식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표출된 사례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망하기는 쉽지만 새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려운 토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STX 그룹과 자산운용부문에서 국내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래에셋의 성공 과정을 보면 여느 재벌의 그것과 다르다. 정경유착 없이도 대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STX 그룹 강덕수 회장은 쌍용중공업(STX), 대동조선(STX 조선), 범양상선(STX 팬오션)을 공개 입찰에서 차례로 인수, 창업 7년 만에 매출 8조원의 회사로 일궈냈다.

미래에셋 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은 90년대 말 자신의 이름을 딴 박현주 펀드나 개방형 뮤추얼 펀드, 적립식 펀드 같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히트 상품으로 금융그룹을 일궈냈다.

이 두 명의 CEO는 공통점이 많다. 첫째는 금융을 잘 아는 샐러리맨에서 출발했다.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에서 재무담당 전무(CFO)까지 지냈고, 박 회장은 동원증권에서 최연소 지점장을 역임했다. 두 번째는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는 점이다. STX 그룹은 선박과 선박용 엔진을 만들어 모두 수출하니, 내수 시장을 놓고 다른 대기업과 싸우거나 정부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 강 회장은 “수출에 전념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며 “STX는 해외에서 꿈을 이룬다”라고 말한다.

박현주 회장은 1년에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보낸다. 베트남, 인도, 중국을 다니면서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고, 투자 대상을 물색한다. 한번은 상하이 푸둥지역 샹그리라 호텔 뒤에 위치한 대형 빌딩을 사들였는데 가격이3배 가까이 올라 지금은 1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으로 성공하려면 국내보다는 해외 사업에, 내수보다는 수출에 집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으로 STX나 미래에셋처럼 새로운 성공 신화에 도전하는 기업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김영수 산업부장 yskim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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