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미국인에게 던지면 대부분 '주주'라고 답할 것이다. 한국인 중에는 "회사 오너(회장이나 사장)나 주주"라는 답변이 많을 것이다.
기자는 그동안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종업원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순간이었다.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내세우는 '주주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9일 도쿄 고등법원이 내린 판결도 이 같은 일본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 도쿄 고법은 부당한 경영권 방어책 도입을 막아 달라며 미국계 펀드인 스틸파트너스가 불도그소스를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불도그소스는 스틸파트너스가 적대적 기업 인수ㆍ합병(M&A)을 선언하고 주식 공개매수를 개시하자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스틸파트너스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신주예약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스틸파트너스는 이는 주주 차별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1심에 이어 2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도쿄 고법은 "주총에서 가결된 경영권 방어책이 매수자에게 과도한 재산상의 손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스틸파트너스는 중단기적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남용적 매수자"라고 판단했다.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펀드를 다른 주주와 차별하는 것은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스틸파트너스는 곧바로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으며 현재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워런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의 발언이 일본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지난달 13일 이케다 불도그소스 사장 등 경영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소스를 싫어한다(I don't like sauce)"고 말했다. 분위기가 차갑게 변했고 양측의 협의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났다. 일부에서는 외국계 투기펀드를 '쿠로 후네(黑船)'로 지칭했다. 일본의 토종 기업 중 증시에서 저평가된 곳을 골라서 사냥하려는 투기펀드의 모습에서 에도막부 말기 일본 곳곳에 출몰해 개항을 요구했던 서양의 검은 함선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2005년 초부터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논쟁의 불을 댕긴 사람은 인터넷 벤처기업인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전 사장이었다.
그는 일본 최대 민영방송인 후지TV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했고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무라카미 씨가 이끄는 무라카미펀드는 한신전기철도 주식을 대거 확보한 후 경영진을 압박했다. 이들 모두가 '주주 자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일부에서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냈지만 상당수는 이들을 '갓길 주행을 한 경제계 이단자들'로 규정했다. 법이 정비되지 않은 부분을 이용해 약삭빠르게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세간의 생각이 반영된 것일까. 호리에 사장은 지난해 초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으며 두 달 후 무라카미 대표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 후 일본은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M&A 방어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뛰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신 회사법'을 제정해 의결권을 차등 부여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주주의 신주예약권을 배제하는 독소 조항(포이즌 필)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앞으로는 타사 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취득할 경우 미리 신고하도록 독점거래금지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쩔 수 없는 개방을 요구당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외국계 투기세력이 막대한 이득을 챙겨서 떠나갔다. 물론 당시 절박했던 상황을 지금의 기준이나 잣대로 평가한다는 건 무리다. 그러나 이제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났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냉정하게 물어보자.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선량한 주주와 차액만 챙겨서 떠나는 기업사냥꾼을 똑같이 대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도쿄 = 김대영 특파원 kd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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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hoto-media.hanmail.net/200707/17/mk/20070717174011.220.0.jpg)
이 질문을 미국인에게 던지면 대부분 '주주'라고 답할 것이다. 한국인 중에는 "회사 오너(회장이나 사장)나 주주"라는 답변이 많을 것이다.
기자는 그동안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종업원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 순간이었다.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내세우는 '주주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9일 도쿄 고등법원이 내린 판결도 이 같은 일본인들의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 도쿄 고법은 부당한 경영권 방어책 도입을 막아 달라며 미국계 펀드인 스틸파트너스가 불도그소스를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불도그소스는 스틸파트너스가 적대적 기업 인수ㆍ합병(M&A)을 선언하고 주식 공개매수를 개시하자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스틸파트너스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신주예약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스틸파트너스는 이는 주주 차별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1심에 이어 2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도쿄 고법은 "주총에서 가결된 경영권 방어책이 매수자에게 과도한 재산상의 손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스틸파트너스는 중단기적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남용적 매수자"라고 판단했다.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펀드를 다른 주주와 차별하는 것은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스틸파트너스는 곧바로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으며 현재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워런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대표의 발언이 일본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지난달 13일 이케다 불도그소스 사장 등 경영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소스를 싫어한다(I don't like sauce)"고 말했다. 분위기가 차갑게 변했고 양측의 협의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났다. 일부에서는 외국계 투기펀드를 '쿠로 후네(黑船)'로 지칭했다. 일본의 토종 기업 중 증시에서 저평가된 곳을 골라서 사냥하려는 투기펀드의 모습에서 에도막부 말기 일본 곳곳에 출몰해 개항을 요구했던 서양의 검은 함선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2005년 초부터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논쟁의 불을 댕긴 사람은 인터넷 벤처기업인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전 사장이었다.
그는 일본 최대 민영방송인 후지TV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했고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무라카미 씨가 이끄는 무라카미펀드는 한신전기철도 주식을 대거 확보한 후 경영진을 압박했다. 이들 모두가 '주주 자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일부에서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냈지만 상당수는 이들을 '갓길 주행을 한 경제계 이단자들'로 규정했다. 법이 정비되지 않은 부분을 이용해 약삭빠르게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세간의 생각이 반영된 것일까. 호리에 사장은 지난해 초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으며 두 달 후 무라카미 대표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 후 일본은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M&A 방어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뛰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신 회사법'을 제정해 의결권을 차등 부여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주주의 신주예약권을 배제하는 독소 조항(포이즌 필)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앞으로는 타사 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취득할 경우 미리 신고하도록 독점거래금지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쩔 수 없는 개방을 요구당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외국계 투기세력이 막대한 이득을 챙겨서 떠나갔다. 물론 당시 절박했던 상황을 지금의 기준이나 잣대로 평가한다는 건 무리다. 그러나 이제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났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냉정하게 물어보자.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선량한 주주와 차액만 챙겨서 떠나는 기업사냥꾼을 똑같이 대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도쿄 = 김대영 특파원 kd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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