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훈·경제부 차장대우
세계 투자업계 4대 거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존 보글(Bogle) 뱅가드 그룹 창립자는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주식시장은 현대판 원형 경기장”이라고 했다. 주식이 오락처럼 인식되면서 주식시장이 서커스 혹은 카지노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사실 투자자들이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수천만~수억원을 주식에 베팅하고, 초 단위로 손익을 확인하는 모습은 슬롯머신 앞에 앉은 도박꾼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보글은 경고한다. “우리의 서커스(주식시장) 속에 파멸의 씨앗이 들어 있지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증권사 사장들이 오히려 증시 과열을 경고할 정도로 투자 열기가 뜨거운 요즘, 이런 대가(大家)들의 말의 무게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주식시장의 변덕에 대한 충고 중 가장 백미(白眉)로 꼽히는 것이 워런 버핏(Buffett)의 스승으로 유명한 벤자민 그레이엄(Graham)의 비유이다. 그는 주식시장을 ‘주가 아저씨(Mr. Market)’라는 인물로 의인화해 표현한다. 주가 아저씨는 투자자들에게 주가를 흥정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울증을 앓고 있어서 기분에 따라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은 가격을 자주 부른다. 따라서 그의 기분에 같이 휘말려 맞장구치다 보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자자조차도 주가 아저씨의 변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대단한 의지력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주가 과열의 징후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그 중 네 가지가 요즘 한국 증시와 맞아떨어진다.
①역사적으로 높은 주가 수준(주가지수 2000이 눈앞에 왔는데, 1년 전에 상상이나 했던가?) ②높은 주가수익비율(기업 이익과 비교해 주가가 얼마나 높은가를 나타내는 이 수치가 요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③많은 신용투기(요즘은 심지어 대통령조차 빚내어 주식 투자하는 신용융자를 경고하고 있다.) ④낮은 배당수익(주가가 오를수록 주가와 비교한 배당금은 쥐꼬리가 된다.)
그나마 많은 국내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로 전환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펀드 투자조차 과거의 증시 과열 때를 방불케 하는 무모한 열기가 엿보인다. 주부들이 명품 핸드백을 충동구매하듯 펀드를 이것저것 사 모으고, 안 사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펀드 투자자들은 유명한 연예인에 대해선 잘 알아도, 자신의 돈을 관리하는 펀드매니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미국의 투자 자문가인 케네스 스턴(Stern)은 “펀드는 너무 투자하기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연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엔 전통적인 투자 위험 관리기법인 분산투자조차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예컨대 중국 경제의 위험을 피한다고 해서 중국 외에 미국, 유럽, 한국의 펀드에 분산투자한다지만 요즘 세상에 중국과 관계 없는 지역이나 기업이 어디 있단 말인가?(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또 예금, 부동산, 주식에 3분의 1씩 투자하는 ‘자산 3분법’의 경우도 글로벌 유동성의 힘으로 부동산과 주식이 같이 오르고 내리는 시대엔 의미가 반감된다.
결론은? 비합리적인 열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이 소란스러울수록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마치 워런 버핏이 월가에서 2000㎞나 떨어진 시골 마을의, 컴퓨터도 없는 사무실에서 투자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이지훈·경제부 차장대우 jh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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