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팔 수 있다면, 더구나 그러한 권리를 거래하는 거대한 시장이 열려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면….

봉이 김선달은 그나마 실체가 있는 대동강 물을 팔았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온실가스 배출권이 거래된다고 하니 언뜻 듣기에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출권이 거래되는 시장을 일컬어 '탄소시장'이라고 한다. 자산 규모가 이미 1조달러에 근접했다. 런던 주식거래소에서 거래하고 있는 회사의 절반에 해당될 규모니 이쯤 되면 "그런 일도 있나 보다"고 그냥 흘려버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돼 세계 유수 금융기관과 헤지펀드 등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한 이후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선진 38개국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 의무를 부여하는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 발효되었다. 교토의정서의 가장 큰 특징은 선진국에 강제적인 감축의무를 부과했다는 것과 비용효과적인 감축을 위해 온실가스를 금융상품처럼 거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배출 허용량에 비례한 배출권리를 할당받았으며, 허용량을 초과해 배출하려면 배출권을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야 한다. 허용량보다 적게 배출하는 선진국은 배출권을 타 국가에 판매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감축의무를 받지 않은 국가도 유엔에서 인정한 종류의 감축 사업을 추진하면 유엔에서 배출권을 받아 선진국에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당초 범지구적 환경협약으로 출발한 기후변화협약이 실제 이행 단계에 접어들어서는 각국 경제논리에 입각한 경제협약으로 변하고 있다. 선진국들에 실질적인 의무 감축량이 부과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는지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다.

각국은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해 자국이 받는 경제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배출권 구매를 포함한 가장 비용이 낮은 감축 수단을 찾고 있으며 감축기술 개발과 이전 그리고 지적재산권 보호 등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 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여 확보한 배출권을 거래시장에 판매하여 많은 수익을 확보하고 있으며, 배출권 거래시장에는 거래중개인과 같은 판매대행자나 투자전문기업, 파생금융 상품 등이 등장하는 등 배출권 거래시장을 선점하려는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온실가스 저감 사업과 탄소시장이 각광을 받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장 진출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인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내 온실가스 저감 기반을 확충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산업자원부는 지난 23일 제1호 탄소펀드를 만들었다. 탄소펀드는 유엔에서 인정한 종류의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배출권을 거래시장에 판매하여 수익을 확보하는 펀드다.

그동안 국내 온실가스 감축 사업은 기술적 검토 능력 부족, 금융권 인지 부족으로 인한 자금조달 어려움 등으로 대부분 선진국 주도 하에 추진되었다. 이번에 조성된 펀드는 각 분야 전문가 풀을 구성하여 사업 타당성 검토, 자금조달부터 수익 실현까지 모든 사업 절차를 일원화하여 운영함으로써 국내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5년 108억달러 규모에서 첫 출발한 탄소시장이 작년에는 300억달러로 3배 커지는 등 새로운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어 우리 정부, 기업,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탄소시장에 대한 선진 금융기법 연구나 개발, 투자 경험 축적이나 전문가 육성 등도 중요한 문제지만, 탄소시장을 주도한다는 것은 결국 온실가스를 얼마나 저렴한 비용에 줄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향후에는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국가나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경제 질서가 새롭게 재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에너지 강국은 화석연료 부존 정도에 따라 결정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에너지 신기술 보유 여부에 의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 에너지 신기술 개발과 시장 육성, 선진국과 공동 기술 개발이나 이전에 관한 협력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에너지 신산업을 창출함으로써 기후변화협약을 부담이 아닌 21세기 새로운 에너지 강국으로 자리잡는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기를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아 경쟁자보다 몇 걸음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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