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투표가 있던 날이다. 개표는 다음날로 미뤄졌던 터다. 마감 시간에 쫓기던 중 전화를 받았다. “위에 보고라도 해야겠는데 누가 이기는 겁니까?” 알고 지내던 대기업 중역이었다.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승패가 새나오던 이튿날 오후까지 지인들의 ‘현문(賢問)’과 필자의 ‘우답(愚答)’은 계속됐다. 감은 있었지만 입을 떼기 쉽지 않았다.

요즘 정치부 기자들이 으레 겪는 일이다. 친구를 만나도, 친지를 만나도, 편집국 내 다른 부서에서도 질문은 계속된다. “이번에 누가 되는 거야?” 이해한다. 필자도 누구 못지 않게 궁금하다. 경마식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선거보도 대원칙에 공감하면서도, 선거의 재미는 역시 승자를 맞히는 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름대로 ‘현답(賢答)’을 개발했다. ‘누가 되느냐고 묻지 말고, 누굴 찍을지 고민하라’고.

택시라도 탈라 치면 입장이 바뀐다. 택시는 여론의 바로미터다. 5년 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때 광주에서 ‘노풍(盧風)’의 진앙을 처음 감지한 것도 번갈아 택시를 타며 탐문한 결과였다. 얼마전 좀 다른 기사분을 만났다. 그 분은 ‘왜 남의 장단에 춤추려 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반가웠다. 대선판에 던져진 ‘경제’, ‘평화’ 같은 화두들이 떠올랐다. 정권만 바뀌면 우리 경제가 고성장의 길에 들어서고, 한반도 평화는 손에 잡힐 것 같다. 현실화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허나 많이 듣던 소리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랬다. 대선 때면 늘 거대담론이 춤췄고,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후보선택 거대담론으론 미흡 -

허망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1970~80년대처럼 고도성장을 할 수는 없을 테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범여권 주자 중 한 명이 대역전한다 해도 한반도 평화가 성큼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범여권이 정권을 재창출해도 경제는 망하지 않고, 한나라당이 이겨도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는 시스템화됐고, 대북 포용정책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다. 누가 승자냐에 따라 속도는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을 뜻한다는 ‘7·4·7 공약’을 보자. 삶의 질과의 구체적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에서 도쿄 시민들이 서울 시민들보다 좁은 집에서 사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평화는 빵’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다. 평화는 그 자체로 목표이지 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빵도 마찬가지다. 평화는 평화이고, 빵은 빵이다.

대선주자들만이 아니다. 평소 아파트값이나 ‘사오정(40~50이면 정년)’, 특수목적고, 국민연금, 주식형 펀드를 화제로 삼는 유권자들도 선거만 임박하면 거대 담론의 함정에 빠져든다. 나의 행복보다 국가 미래를 생각한다. 물론 거대담론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명분과 시대정신이 없다면, 선거란 약육강식 논리를 법제화한 데 불과할 수도 있다. 해도, 거대 담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국가와 사회의 이슈, 나와 내 가족의 이슈를 묶어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대선 관전법은 어떨까. 첫째, 가장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작은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꿈인지, 내 아이가 과외 안 받고도 괜찮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지…. 하나일 수도 있고 다일 수도 있다.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이 기준으로 후보들을 살핀다. 둘째, 막연히 경제나 평화를 말하는 후보를 경계한다. 경제나 평화를 말하더라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후보를 선택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후보보다 ‘반값 아파트’를 짓겠다는 이가 공약을 실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셋째, 휩쓸리지 않는다. 관료와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민 개개인이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 투표만이 사실상 유일한 참여의 통로다. 이 소중한 권리를 남들의 눈에 맞춰 행사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 내 가족 이슈도 묶어선 판단을 -

거대 정당·언론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선거판을 바라볼 때 세상은 바뀐다. 후보들간 정책·비전 경쟁은 구체화하고, 오랜 늪이던 지역주의도 덤으로 사라질 것이다. 투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복무행위가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권리다. 누가 될 것인가 묻지 말고, 누구를 찍을 것인가 생각하자. 그것도 아주 이기적으로.

〈김봉선/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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