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 두 사람이 있었다. 돈을 똑같이 대고 함께 사업을 일으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기업을 크게 키웠다. 세월이 흘러 이젠 사업을 분할해야 할 시점이다. 땅, 건물, 기계장치 등 모든 재산을 둘로 쪼개야 한다. 서로 불만이 없게 사업을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세 명(허위츠, 매스킨, 마이어슨)의 이론은 이 질문에 해답을 준다. 먼저 한 사람이 최대한 공평하게 기업 재산을 나눈다. 다른 사람은 두 개로 분할된 재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그 결과 이해상충 없는 재산분할이 가능해진다. 빼앗긴 아기를 되찾아준 솔로몬의 지혜와도 닮은 해법이다.

제도설계이론(mechanism design theory)은 합리적인 자원배분 규칙을 제시하는 게임이론의 한 분야다.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완전한 경쟁 하에서 던져지는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는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도움을 주는 손'을 붙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이론에서 계획자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나오도록 제도를 설계한다. 사실 계획자는 정보가 부족하다. 경제 주체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제도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경제 주체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다. 게임에 참가함으로써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참여자들이 가진 정보를 사실대로 공개하도록 유인책을 줘야 한다. 잘하는 일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제도와 참여자의 이해가 일치된다.

제도설계이론은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정보가 유동성보다 더 중요하다." 제프리 래커 미국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FRB) 총재가 한 말이다. 지난 8월 미국 FRB가 단행한 재할인율 인하는 유동성 공급보다 신용경색 사태를 수습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정보 공개를 통해 투명성이 높은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꾸준하다. 이와 관련해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s)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국부펀드는 글로벌 머니게임의 주역이다. 이는 한 국가가 적정한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이상으로 관리하는 외화 자산이다. 정부기구가 보유 외환을 직접 국외 자산에 투자한다. 목표는 공적 보유액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는 데 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30여 개 국부펀드가 2조5000억달러로 헤지펀드(약2조달러)를 웃돈다고 추산했다. 2015년까지 그 규모는 12조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아부다비, 싱가포르,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중국, 러시아는 7대 국부펀드를 운용한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신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국부펀드가 금융 세계화 시대에 '뉴 플레이어'로 부상했다"며 "국부펀드의 건전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가이드 라인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7개국(G7)은 국부펀드가 정치적인 목적에서 운용되며 에너지 금융 통신 인프라스트럭처 국방 등 기간산업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국부펀드 규제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호혜주의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가 중국이나 중동 지역 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을 때만 국부펀드에 대해 기업 인수를 허용한다.

둘째, 투명성이다. 헤지펀드보다 투자내용이 베일에 가려진 국부펀드의 포트폴리오와 투자전략을 공개한다. 셋째, 경영권 지배 차단이다. 국부펀드의 투자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소수 지분 취득만 허용한다. 어렵사리 민영화한 기업을 외국 정부가 인수하면 곤란하다. 넷째, 공정 경쟁이다. 민간 펀드와 경쟁에서 국가 보증이나 융자를 받거나 시장규율을 위반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규모 문제다. 민간자본을 위축시키고 시장의 자산가격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 같은 규제 움직임에 대해 중국 등 국부펀드 운용국은 강력히 반발한다. 협의기구도 검토하고 있다. 헤지펀드처럼 시장을 위기에 몰아넣은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상업적 동기를 갖고 보수적인 운용전략을 펼치면서 시장을 안정시키는 자금줄이라는 설명이다.

참여와 유인책 없는 규제는 제도설계이론에 비추어 볼 때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한국투자공사는 200억달러의 국부펀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국제금융질서 변화에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아울러 각종 위험관리에 만전을 기하면서 글로벌 투자은행의 정보를 십분 활용해 운용능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국제부 = 홍기영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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