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돈 1달러로는 캐나다 1달러를 바꾸지 못하고, 1.46달러가 있어야 1유로를 받을 수 있다. 1999년 1월 1일 유럽연합이 유로화를 출범시켰을 때는 거꾸로 1.18유로가 있어야 1달러를 살 수 있었다.

생활비가 미국에 비해 싸다고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낸 한국 부모들은 끙끙 앓고 있다. 유학원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가려는 발길은 줄어들고 미국은 늘고 있다고 한다. 유럽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쪼들려서 못살겠다. 이러다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나 하겠나"라며 한숨 짓는다는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중동에서, 아시아에서 달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듯하다. 달러패권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달러값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력이 커진 중국 인도로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미국 영향권이었던 중동 국가들이 9ㆍ11테러 이후 오일달러를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아시아, 중동 지역에서 굴리려는 움직임도 영향을 줬다는 정치ㆍ경제학적 분석도 가세하고 있다.

한국의 돈 흐름도 몇 년 새 밑바탕부터 흔들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은행 예금에 묻어둔 거액 자산가들은 아무리 증시가 호황이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금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찬 고객들이었다. 이들 '원조부자'들이 움직였다. 정기예금에 넣어두면 세금 빼고 받는 이자가 겨우 3% 선에 그친다는 점, 부동산시장이 꽁꽁 묶여 있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

한 은행 PB 얘기를 들어보면 구권 화폐를 가마니째 보관하고 있다가 가져가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생 예금 고객들이 돌변해 국내 펀드에 돈을 넣더니 브릭스펀드, 글로벌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넘어서 러시아 동유럽 중남미까지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주가지수연동예금에서 PEF(프라이빗에퀴티펀드), 물펀드까지 갖가지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연금이나 대학기금, 문화ㆍ장학재단이 주식투자를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하던 것도 옛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원금을 까먹을 뿐이다.

퇴직연금 변액연금보험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증시는 종합주가지수 2000선이라는 미답의 고지를 넘나들 정도로 상승했다. '자금 대이동' 조짐을 미리 감지한 사람들은 한몫 챙겼고, 주변에 신흥부자들을 만들어 냈다.

올해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편입된 지 10년째다. 외환위기는 이전과 이후로 '시대 구분'을 해야 할 만큼 한국자본주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요즘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다. 혹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에 위기를 맞게 될지, 후에 맞게 될지, 아니면 고속성장을 지속할지 궁금해 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후폭풍이 얼마나 더 갈 것인지, 원ㆍ달러 환율은 900선이 무너질지 아닐지를 주시하고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아무 펀드나 사달라"는 묻지마 펀드 고객도 여전하기는 하다.

그러면 다가올 10년은 어떨까. '시세는 귀신도 모른다'는 투자 격언이 있다.아무리 재테크 고수라도 무슨 비법이 있을 수 없다. 핵심은 돈 흐름의 물줄기가 어느 쪽일지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다. 대세를 짚어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을 보고 돈을 넣는 게 맞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예금 중에서 어느 쪽이든 투자는 한 국가를 사는 일이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각국 경제는 서로 '커플링'돼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한국을 매력 있는 나라로 만들어 국내외에서 돈이 몰리게 하면 된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국민 개개인이 자산을 불리게 된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한국인 자신의 몫이다.

얼마 전 한 외국인 투자자를 만났다.그는 한국을 찾았을 때 얘기를 꺼냈다.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인들처럼 열정적이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프로듀서로서 성공한 가수 박진영 씨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사람들은 반드시 성공한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은 한국 사람들은 해내기 때문이다. R 켈리(유명한 미국의 팝가수)를 만나기 위해 집 근처 호텔에서 4일 동안 죽치고 있었더니 연락이 오더라"고 말했다. 3만달러 시대를 향해 다시 신발끈을 조여맬 때다.

[조경엽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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