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문화부 공연팀장
지난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일반 매표가 800장 안팎에 그쳤다. 콘서트 홀 2500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주최측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주최와 협찬을 포함해 공연 후원 기업이 이미 10곳에 이르렀고, 기업측에서 돈을 내고 대신 표를 가져간 이른바 ‘협찬 티켓’이 1000장에 훌쩍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제 돈 내고 티켓을 구입한 관객보다 오히려 많았던 셈이다.

역시 지난 주말 세종문화회관에서 막 내린 대형 오페라는 ‘티켓을 손에 쥐기 힘들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4회 공연이 대부분 매진 행렬을 이뤘다. 최고가 30만원이 넘는 티켓을 구입한 주요 관객 역시 일반 음악 팬은 아니었다.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때처럼 기업 협찬을 통한 ‘간접 판매’가 주를 이뤘다.

지난 9월 ‘문화 접대비’ 제도가 시행되면서 공연계에 대한 기업 후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기업의 접대비 지출액 가운데 문화 관련 지출이 3%를 넘는 경우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추가로 손비를 인정해주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문화 후원을 늘리면서 동시에 혜택도 받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공연계에서는 자칫 공연입장료나 공연계 전반에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이런 우려가 기우(杞憂)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업의 공연 후원은 철저하게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나 오페라·뮤지컬 등 대형 공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 보니 젊은 독주자와 실내악단, 창작 뮤지컬과 소극장 오페라 등 ‘작지만 강한 공연’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온 연주자들이나 공연 기획자들은 이 제도가 시행된 뒤에도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후원금=티켓’이라는 맞교환 방식도 부작용을 낳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기업에서도 후원금에 상당하는 금액의 티켓을 가져가기 때문에, 티켓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좌석 점유율을 높이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반 소비자인 직접 구매 관객들은 “기업들이 공연을 주최하거나 후원하는데도 정작 티켓 가격을 내리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공연의 경우에는 “1층은 초대권 관객, 3층은 일반 관객”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하지만 더욱더 심각한 우려가 있다. 지금처럼 공연을 후원하고 티켓을 가져가는 ‘1회성 지원’은 한국 경제의 파고(波高)에 따라서 곧바로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 후원도 따라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럽의 대형 투자기관인 UBS는 영국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후원하면서 교향악단 단원의 이미지 사진을 자사(自社) 기업 광고에 싣는다. 도이체방크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어린이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베를린 필의 미래’를 함께 진행한다. 한국메세나협의회에서도 1회성 후원에 그치지 않도록, 기업과 공연 단체를 파트너십으로 묶어주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과 ‘중소기업 예술 지원 매칭 펀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장기적인 후원 문화는 공연계의 거품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강력한 안전 장치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후원만이 아니라, 꾸준하게 빛을 계속 낼 수 있는 후원 방법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성현 문화부 공연팀장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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