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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미국 워싱턴DC 주미 대사관 공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 얘기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의원들과 언론에 배포한 국감용 보고자료에 눈길 가는 '건의'를 끼어 넣었다.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해야겠으니 50만달러의 비용을 내년 예산에 배정해 달라는 요구였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무기나 군사장비를 구매하는데 지금보다 신속하게 처리하고 수수료도 감면받도록 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돼 있으니 이를 성사시키도록 로비스트를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미주리 출신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이 법안은 한국의 지위를 나토 동맹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격상해주자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이고 대우도 달라진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나섰고 관련 군수업체와 국방부 등이 지원하지만 관건은 역시 의회에서의 지지였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본드 의원 외에 다른 상원의원들의 동조를 끌어내려면 로비스트 고용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공론화했다.
우리에게 로비는 그동안 금기였다. 불법으로 취급됐고, 떳떳하지 못한 일에나 동원하는 개념으로 간주됐다.
주미 한국대사관이 공개적으로 로비스트 고용에 나선 것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정도다. 적은 비용으로 요란하지 않게 활동할 수 있는 후보를 골랐다. 젊은 한국계 미국인이 파트너로 일하는 '스크라이브 스트래티지스 & 어드바이저스'라는 로비회사가 선정됐다. 그의 의회 보좌관 경험이 높게 평가됐다.
그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 적용과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이라는 두 현안이 떠올랐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로비스트를 최대한 활용했다.
하원의원들이 연명으로 한국에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조속히 적용하자는 지지 서한을 행정부에 발송했다. 미국 매체들의 한국 관련 보도도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는 공동발의 서명 의원 늘리기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미국에서 로비스트 고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워싱턴DC에서 우리도 로비회사 고용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양국 행정부간에 협상을 끝내고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위해서도 로비스트와 계약을 맺었다.
'애킨 검프 스트라우스 호이어 & 펠드'라는 긴 이름의 로비회사는 한ㆍ미 FTA에 대한 미국 의회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뛰고 있다. 그 회사에 몸 담고 있는 민주당 실세 찰스 랭글 하원 세입위원장의 정책 총괄 보좌관을 지낸 로비스트를 활용하려는 것이다.
미국 내 로비회사들의 실적은 분기마다 상원에서 낱낱이 집계한다.
지난해 말 기준 최대 규모는 패턴 보그스라는 로비회사였다. 한 해 수입은 3530만달러. 2위는 반 스코이옥 어소시에이츠, 3위는 애킨 검프 등이다.
지난 상반기에는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12위권에 머물렀던 '오길비 가버먼트 릴레이션스'라는 작은 로비회사가 일약 실적 수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오길비'는 단 하나의 계약에 374만달러의 수수료를 받았다. 유명한 사모펀드 블랙스톤그룹이 의뢰자였다. 미국 의회가 사모펀드 및 헤지펀드에 대한 세율을 현재의 15%에서 35%로 올리려는 법안 입법을 추진하자 사모펀드들이 이를 완화하기 위해 대 의회 로비전에 나선 때문이다. 사모펀드 KKR도 로비회사 '애킨 검프'와 12만달러에 계약했다. 사모펀드협회 역시 '애킨 검프'에 10만달러를 지급했다.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이다. 대 의회 업무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워싱턴 정가를 알려면 로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로비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한국 같은 약자에게 로비는 반드시 써야 하는 약이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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