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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이러한 은행 수익원에 구멍이 뚫리게 됐다.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은행 예금잔액이 줄고 대출도 주택담보대출 부진과 기업 자금수요 감소로 제동이 걸렸다. 예금과 대출 부진은 자연히 예대마진 규모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최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순이자 마진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예금 이탈로 비상이 걸린 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자 이번에는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CD금리는 6년4개월 만에 최고치인 5.4%를 돌파했다. CD금리 상승은 이에 연동돼 움직이는 주택담보대출을 끌어올리고 이는 대출수요를 더욱 줄이고 있다.
결국 은행들은 전통적인 수익원 붕괴라는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은행이 본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자금중개 기능마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당장에는 대출재원 부족이 이유가 되지만 내년부터 시행되는 '바젤2 협약'에 의한 자기자본비율 규제(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 강화에 대비해 신용도가 낮은 소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는 은행들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마저 건전성을 이유로 대출억제를 유도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시달려 온 자영업자들은 "비오는데 우산 뺏는 격"이라며 정부와 은행의 이런 행태에 반발하고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국내시장에서 편하게 장사를 해 왔다. 그러나 지금 커다란 시련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은행들은 일찍부터 외국에 나가 시장쟁탈전을 벌이며 외화를 벌어들였던 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질이 약하다. 외환위기 전 은행은 정부의 호송선단(護送船團) 방식 행정지도 아래서 영업을 해 왔기 때문에 애당초부터 허약한 체질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 후 은행은 퇴출과 합병 등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체질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선진국 상업은행이나 투자은행에 비하면 규모나 인적 자산, 영업범위, 리스크 수용 능력 등 면에서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거나 외국 증권사를 인수하거나 하는 등 국외 영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국외 자산이 1조원에 불과할 정도다. 국내은행 총자산에서 국외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 정도로 씨티은행, HSBC 등 선진 은행의 50% 이상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다.
미국 월가를 보라.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실적 악화로 사임당한 금융기관 CEO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IB)들은 한 평의 풀밭을 보고 만족하는 우리 은행들과는 달리 넓은 초원을 찾아 사자와 같은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 공격적 경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경쟁력이 높아지고 생존 비법도 더욱 터득되는 게 아닌가.
우리 정부도 은행들이 온실에서 뛰쳐 나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은행이 국외영업을 하다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진다는 생각 때문에 언제까지나 국외 지점이나 법인 설립 등을 신고수리제 등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외국으로 눈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은행도 소비자 주머니 돈만 챙기는 편한 장사에서 벗어나 기업들처럼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고 국부창출에도 기여해야 한다.
[온기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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