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특파원 사무실에 갑자기 전기가 끊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곳은 멀쩡하다. 그제서야 "아차, 이곳은 중국이지"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국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는 대부분 요금을 미리 충전해야 전기와 가스가 공급된다. 돈이 떨어지면 꼼짝없이 전기ㆍ가스도 끊어진다. "조금만 봐달라"고 하소연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을 '서구사회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일컫게 하는 단면이다.

전기요금을 충전하러 은행에 가서도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인파로 북적이는 중국 은행창구에서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그런데 '번호표'를 헤아리며 기다릴 시간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대고객 카드'를 소지한 고액 예금자들이 나타나면 보통 고객의 '대기번호'는 무시되고 그들의 업무가 먼저 처리된다. 중국 고객들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다. 1~2시간 기다린 끝에 본인 차례가 다가왔을 무렵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들면 짜증이 날 법한 데도 "저 사람들은 우대고객이고 난 아닌데"하는 반응뿐이다.

그래서 경제부총리까지 역임한 한국 경제학자는 중국을 둘러보고 나서 "세계 9대 불가사의를 발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존의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그가 덧붙인 두 가지는 '평등의식으로 가득찬 한국인이 자본주의에 성공한 기적'과 '불평등을 쉽사리 수긍하는 중국인이 반세기 동안 공산주의를 유지한 기적'이다.

중국인의 특성을 꿰뚫어 본 통찰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특파원의 걱정은 여기서 시작된다.

몇몇 분야에서 표출된 자본주의적 속성 때문에 "혹시 중국사회를 온전한 자본주의 시장으로 생각해 버리지는 않을까"하는 기우다.

'경제의 거울'이라는 주식시장은 온전하지 못한 중국의 자본주의를 그대로 투영한 곳이다.

상하이ㆍ선전 증시는 아직도 내국인 투자용 주식(A주)을 분리해 놓고 외국인 투자는 엄격하게 차단하는 '죽의 장막'으로 둘러쳐져 있다.

주식형 펀드를 판매하려 해도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수요와 공급도 강력한 정부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주가가 하락하면 1~2년간 신규 기업상장을 중단시켜 버리고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2~3개월 동안 펀드 판매를 막아 버리는 게 중국이다.

국가 영도자의 말 한마디면 금융정책도 손바닥 뒤집듯한다.

외환관리국은 8월 "중국인의 홍콩 증시 직접투자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며 홍콩 증시폭등을 유발했다. 그러나 최고지도층이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걸"하고 한마디 던지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없던 일로 변해 버렸다.

이달 초에는 인민은행 선전지부가 "홍콩으로 밀반출되는 자금을 막겠다"며 은행권 현금인출 제한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며칠 뒤 원자바오 총리가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하고 한마디 하자 바로 다음날 이 조치가 사라졌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언제부턴가 "올해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내년 8월 베이징올림픽이 중국 주가에 변곡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후진타오 주석의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공산당대회와 중국의 부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올림픽을 어떻게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르도록 분위기를 유도할 것이란 뜻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세계 금융시장이 지난 8월 '미국발 금융경색'에 놀라 요동칠 때에도 끄떡없이 상승하던 상하이주가는 공교롭게도 공산당대회가 개막한 다음날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물론 쥐락펴락하는 정부 통제도 경기팽창ㆍ수축이라는 큰 흐름은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 주가를 이해하려면 영도자들의 생각부터 읽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 때문인가. 골드만삭스는 최근 "이익성장률 둔화가 내년 중국 증시의 부담"이라면서도 "중국 주가는 내년 중반쯤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 = 최경선 특파원 choik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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