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EPL)로 보는 창의성
《창의성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 발현의 3요소로 일련의 상징적 규칙과 절차로 이뤄진 ‘영역’, 그 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활동 ‘현장’,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개인’을 꼽았다. 창의성이란 기존의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변형시키는 행위와 사고, 혹은 작품을 말한다. 또 창의적인 사람이란, 일정한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는 사고나 행위의 주체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보자. 그곳에서는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최고 수준의 경기장에서, 최고의 흥행 성적을 내며, 관중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창의성의 발현에 있다.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창의적으로 플레이한다. 최고의 고객만족이나 최고의 흥행 역시 창의적 마케팅과 창의적 발상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창의성 발현의 3요소를 여기에 대입시켜 보면 ‘영역=축구, 현장=프리미어리그, 개인=플레이어’가 된다. 물론 세리에A나, 프리메라리가를 대입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제 이 경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림이 그려지는가?
아무리 타고난 축구 기량을 가진 사람도 산간벽지에 틀어박혀 평생을 살면 축구라는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는 없다. 또 박지성 선수나 이청용 선수가 만일 K리그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과연 기량이 지금만큼 향상될 수 있었을까? 즉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 즉 최고 수준의 리그에 투입되지 못하면 그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기 힘들다. 또 그들이 종목을 달리 선택해 농구 선수가 되었다면, 과연 지금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었을까?
즉,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발휘할 ‘영역’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저 잘 하는 게 아닌 탁월할 수 있는 곳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현장’에서 뛰어야 한다. B급 리그에서는 B급 수준의 탁월성밖에 발휘할 수 없다.
지난 80년대만 해도 잉글랜드의 축구리그는 축구 종주국의 리그임에도 독일의 분데스리가나 이탈리아의 세리에A, 에스파냐의 프리메라리가보다 인기가 없었다. 결국 영국축구협회 FA는 1992년, 리그의 혁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92~93년 시즌에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켰고, 이 리그는 그로부터 불과 15년 만에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만들어냈을까?
첫째, 창의적인 플레이어다. 물론 유럽 지역의 선수들은 역량에 따라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프리미어리그 팀에 들어가 뛸 수 있다. 하지만 비유럽 지역 선수들의 경우는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이 속한 국가 자체가 FIFA 랭킹 70위 안에 들지 못하면 팀에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앞의 조건에 부합해도 국가 간 경기인 A매치에서 지난 2년간 최소 75퍼센트의 경기에 출장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즉 프리미어리그의 의도는, 거르고 걸러 최고 수준의 선수들만 모아 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포지션 하나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경쟁이 창의를 낳는다. 프리미어리그는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 창의적인 플레이를 필요로 하며, 선수들 또한 독창적인 플레이로 감독의 눈에 들어야 원하는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둘째, 프리미어리그의 창의적인 흥행 방식과 고객 만족 비법도 프리미어리그를 최고 리그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은 관중들이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관중석이 그라운드에 밀착되어 있다. 경기를 찍는 중계 카메라도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잡는다. 심지어는 근육의 움직임과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잡아낼 정도다. 이러한 경기장의 배치와 중계 카메라의 수준은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대박’의 비결임은 물론이다.
셋째, 프리미어리그는 철저한 무한경쟁 시스템을 도입했다.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하는 팀은 총 20개다. 그런데 정규시즌이 끝나면 하위 2개 팀이 2부 리그로 방출된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2부 리그 1위 팀이 자동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고 나머지 하나의 티켓을 놓고 2, 3, 4위 팀이 격돌한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살아남으려면 선수, 감독, 구단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처럼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다보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최대의 창의성이 발현된다. 그런 점에서 창의성은 절벽에 섰을 때 구현되는 것이다.
창의성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또한 창의성은 단지 아이디어의 소산도 아니고, 단순히 IQ와 비례하지도 않는다. 사실상 창의성이란 거대한 벽에 부딪혔을 때, 반드시 그 벽을 넘고 말겠다는 도전 의식과 필사적인 자기 투쟁의 과정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성질에 가깝다. 그렇다면 창의성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최고의 플레이, 독창적인 플레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끌어내려면 최고 수준의 경쟁 리그를 만들어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조직 자체를 최고 수준의 경쟁 조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창의성을 추구하는 조직의 업(業)은 각각의 구성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며 뛰어 놀 수 있는 업이기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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