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는 잘 보지 않았지만, 매우 좋아하던 무리뉴 감독의 어록을 모았습니다.

 

1. 아스날은 지금까지 쉬운 상대만 만났다.


2. 바르셀로나는 11:11로는 절때 첼시를 이길수 없다.
    나를 유일하게 괴롭히는 것은 정말 유일하게 '심판 판정' 뿐이다.
    누캄프에서 심판들이 바르셀로나에게 몇번 PK를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리오넬 메시는 훌륭한 '연기자'이다.

 

3. 나에게 축구란 징크스, 통계가 아니다.


4. 난 주변에 널려있는 시시한 감독이 아니다. 난 스페셜하다.


5. 왜 EPL 클럽들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실패하지는 먼저 깨달아라.
   지난시즌 무패우승을 해낸 웽거의 업적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실패하지

   않았는가?  아르센 웽거와 나와의 축구에 대한 관점은 다르다. 난 이기는게 목표다. 2년안에 6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


6.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수는 없고 승리를 보장 받을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의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


7. 난 챔피언스 리그 우승 감독이다. 새로운 챔피언이 나타나기전까지는 존경받을만 하다.


8. 나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9. 바르셀로나 공항에서부터 바르샤팬들이 내게 침을 뱉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환영 인사도

   기대하지 않았다.


10. 뉴캐슬의 감독의 역임했던 그래엄 수네스가 "무링요가 이빨을 놀리는 것은 스트레스 때문에"
     라고 말하자 무링요 감독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뒤 "지금 수네스는 어디서 일하는거지?"
     라고 반문했다. 당시 수네스는 뉴캐슬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무직상태였다.


11. 사실 지금 첼시의 스타일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

     하려면 이런 스타일을 할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의 취향대로 팀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12. 요한 크루이프 왈,

     "첼시의 무링요 감독은 이기는데만 집중한다. 재미도 없고 상대팀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난 결과만

     추구하는 지도자들을 동정하고 싶지 않다. 무링요에게 아약스의 토털사커를 가르칠수 있다면 행복

     할 것이다."

 

     무리뉴 답,

     "크루이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난 늘 발전하고 있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첼시 역시 해가

     가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크루이프는 아직도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듯 하다. 그가 좀 더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내가 도와줄수 있다."


13.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듯 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14. 난 어릴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시가 미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15. 축구는 나를 나이먹게 하지 않는다.

 

16. 결함이 없는 클럽, 매니저, 선수는 없다. 하지만 첼시는 내게 무결점을 요구한다. 난 헛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첼시의 이런 요구는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17.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되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거 보다는

     솔직한게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18. 사람들은 나의 기자회견에서 상대팀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난 한번도 상대

     팀을 존중하지 않은적이 없다. 내가 한 말은 누구나 할수있는 말이다. 예컨데 맨유전에는 난 '승리

     하러 올드 트레포드로 간다' 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할수 없는건가? 게임들 전후에 몇개의 메시지

     를 감독으로서 던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9. 사람들은 맨유랑 아스날의 축구가 좋은 축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축구를

      잘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20. 아스날에 키(Key)는 이것이다. '아름답게 플레이하고 승리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 2경기에서

     한골도 넣지 못했다.

 

21. 선수 선발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첼시를 위해서 선발되는 것이다.
     우리팀에는 메시도, 호나우딩요도 없다. 하지만 첼시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환타스틱하다.

 

22. 여러 명문 클럽의 지휘봉을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스페셜한것은 아니다. 알렉스 퍼거슨은
     맨유만 20년 지휘했지만 그는 스페셜하다.

 

23. 저흰 항상 팀으로써 이기고 경기합니다. 제가 여기 속한 이유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전

     여기 오랫동안 오랫동안 있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팀은 항상 이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의심도 없습니다.

 

24. 포르투에서 데코를 만들었듯, 첼시에서는 람파드를 최고의 탑플레이로 만들겠다.

 

25. 나는 아직 축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적인 접근은 분명 감독을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26. 쉬지않고 뛰어라! 너희들이 받는 돈 이상으로 뛰어야만 살아남는다.

 

27. 세계 각지의 탑플레이어들 중엔 자기만 생각하거나 받을돈만 바라보고 있고, 아름다운 인생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첼시의 모든 개개인은 정말로 팀의 결과와 성공만을 헌신하고

     있습니다. 

 

28. 축구에 대한 사고관념이 변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거든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가족입니다. 시합에 지면 물론 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어요.


29. 05-06 시즌에 맨유가 리그후반 10연승을하면서 첼시를 턱밑까지 쫓아오자,

      내가 두려워 하는건 오직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게 뭐가 있냐?
      "나는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두렵다."

 

30. 바르샤와의 챔스 32강 조별예선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하는데 스페인측 기자 왈,

     " 당신은 바르샤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이렇게 바르샤에 무례하느냐?"

     고 비아냥거리자.....


     무리뉴 왈,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팀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


 
어떤 것에서

곧바로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밝은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는

좋은 점만 찾으려는 사람도 있고

나쁜 점만 찾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수많은 나쁜 점들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한 단 하나의 좋은 점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 이야말로


진실로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들입니다.

 

 

- 가반 도우즈 -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원대한 목표가 있습니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사거리에서 어디로 갈 지 몰라 방황하고 계속 빙그르르 도는 쳇바퀴 속의 다람쥐와 같습니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뭔가를 시도해도 결국 그 행동이 목표와 정렬되지 않는다면,

 

그 힘은 분산되어 흩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인이라면,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달려나가야 합니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학교와 학원에 다니며, 청춘을 소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아깝지 않을까요?

 

군대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괴로움 ~

 

스스로의 목표가 없는 삶은 괴로우며,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 뿐입니다.

 

목표를 설정하기 어려워서,

 

남이 정해주는 목표를 따라서 그럭저럭 직장을 얻고, 그럭저럭 결혼을 하고, 그럭저럭 집을 얻고,

 

그럭저럭 아이를 키우고, 나중에 노년이 되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길을 찾으십시요.

 

보이는 불빛이 없다면, 스스로가 횃불이 되어, 등불이 되어 길을 밝히십시요.

 

공부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이자 호기심의 발로입니다.

 

열심히 자기개발하면서, 가치있는 있는 탐구한다면, 또한 '내면의 목소리'를 쫓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

 

힘들게 목표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힘들고 어려움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별빛이 되어

 

그대를 안내해 줄 것입니다.

 

 

 

- 2007.7.10 이른 3시 Geni -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 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첫번째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 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

고,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 "물론이죠" , 그런데 알고 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

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

내 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텐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 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

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 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였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 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하서 배워 보기로 마음 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

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캐킨

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 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

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 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

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양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

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 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

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인생, 가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 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위즈(스티브 위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 당시, 애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 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

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고의 실패작' 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

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

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

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론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 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 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 낸

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 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

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 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두려움들은 '죽음'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

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게 뭔지도

몰랏는데요.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

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

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

가 죽음에 가까이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

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 줘야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요.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 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번의 개정판을 내 놓았고, 수명이 다 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 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지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오늘 고생하신 땀은

 

내일 아침식단의 소금이 됩니다.

 

열심히 하신 그대에게

 

내일의 축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2007.1.15 늦은 11시 Geni -

상대의 태도와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에게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을 줄 때, 그도 자신의 방어벽을 낮추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 치 한 치, 성벽들이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그도 염려나 불안 없이 최선을 다해 관계에 임합니다. - 에크낫 이스워런의《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중에서 -

모든 위대함에는 인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읽어보셨나요?
위대학 명작 엘리스에 얽힌 Behind Story를 오늘은 들려드리려 합니다.
   작고도 강한 땅 영국, 거기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옥스퍼드라고 아시죠? 옥스퍼드는 실제로는 도시이름이지 대학이름은 아니라고 합니다. 거기서 가장 실력있는 대학이었던 '그리스도- 교회'

대학에서 '찰스'는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죠.어느 날 그 대학에 새로운 젊은 총장님이 오시게 되었는 데, 그 총장님에겐 3살난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스 리델'.......

 

찰스'는 엘리스를 본 순간 그녀의 맑은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리델의 모습에 잠을 이루지 못할정도였지만,, 그녀의 어린 나이에 '찰스'는 안타까운 마음만 달랠 뿐이었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그는 엘리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엘리스를 위한 편지는 10년동안 계속되었고,,, 10년이 지나
엘리스도 결혼 가능한 나이인 14(우리나라 16)이 되었습니다.
'찰스'는 이제 사랑고백을 할 굳은 결심을 하고 총장댁에 찾아가지만
총장나이와 비슷한 '찰스'를 총장댁에서 받아 줄리가 없지요.
'
찰스'는 총장댁에서 거부당하고 정든 옥스퍼드를 떠나게 됩니다.
'찰스'가 엘리스에게 주었던 10년이 넘는 '동화같은 편지'들은
엘리스의 동네 청년 '지미'라는 청년이 엘리스에게 준 것으로 하고 총장댁에서는 '엘리스' '지미'와 결혼시킵니다.
자신을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준 줄 알았던 '지미',,,

결혼 후 음주, 도박 등으로 엘리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
엘리스'는 우울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고, 3년후에 결국 이혼을하게 됩니다.
  

반면 시련의 아픔을 겪고 있던 찰스는,,,
그동안 엘리스에게 썼던 편지들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고,,
그 책 이름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입니다.

 

어느 날 엘리스의 집앞에 한통의 우편물이 왔죠.그 우편물은 찰스가 엘리스를 위해 보내왔던 편지의 모음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책이었습니다.

'엘리스' 편지를 쓴 사람이 책의 저자임을 눈치채고 출판사를 찾아가 작가를 만나기를 원하지만,,,,

찰스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찰스는 연락을 거부한 채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집안의 반대로 보내야 했던 찰스..

자신을 사랑한 사람을 모른 채 고통의 세월을 보낸 엘리스..

그리고 이들의 이루어 지지 못한 가슴아픈 사랑...

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작지만 강한 한 권의 책' 을 남기고,,,

잊혀져 갔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없지만,,, 찰스가 간절히 바라던 엘리스에 대한 사랑 만큼은 후세에 오래오래 기록될 것입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종이가 불타버리지만 않는다면,,,,,,, 

 

 

==> 재미있으셨나요? 위대한 사랑일수록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따르며,,,  위대한 작품일수록 작가의 생애는 매우 고달픈 작품이 많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왠만한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겨내셔야 합니다.   우리까페 회원님들은,,   

    누구보다 훌륭하고,,,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지며,,,,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실 수 있는   

    훌륭하신 분들임을 믿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훌륭한 아름다움 하나를 한 세상 마치기 전에후세에 남겨줄 수 있는 아름다운 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경제도 어렵고, 공부도 어렵고,  많이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열매를 바라보고 힘내십시요!!!!!!!!!  내가 밝은 미래를 꿈꾸며 긍정적으로

살아갈 때  남들 또한 밝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정말 꿈꾸고 열망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훌륭한 자신을 믿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요.^^ 이번 한 주도 즐겁고 힘차게 보내세요 ^_____________^

 - If You are thinking your bright life,
   Bright dream will be come true -
 ( Written By Geni )

 

▶ 이별로 인해 괴로워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바칩니다.

 

사랑이 떠나가는 것처럼,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인생의 필연이다.


고로 사랑이 떠나감을 원망하지 말고,
사랑이 찾아옴을 거부하지 마라.

 

 

* 이별로 인해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꼭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 2007.9.19 이른 1시 30분 Geni -

 

  - 하루를 열심히 살면 한 주가 달라진다.

 

     한 주를 열심히 살면 한 달이 달라진다.

 

     한 달을 열심히 살면 1년이 달라지고,,

 

     1년을 열심히 살면 인생이 달라진다.   -  

 

새로운 아이디어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짓는다.

출처 : 갑부
글쓴이 : 헤이리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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