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빚더미에서 신음하다 ‘뜨는 젊은 시장’ 변신

한·러 경협 20년… 옛 소련 붕괴 후 ‘추락의 길’ 러시아의 오늘은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입력 2010.09.29 22:11 | 수정 2010.09.29 22:22

 




30일로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정확히 따지면 당시 한국과 수교를 맺은 국가는 러시아가 아니라 옛 소련이었다. 사회주의 실험의 참담한 실패로 몰락해가는 '슈퍼파워'였던 소련은 이제 탄탄한 지역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수교 20주년을 계기로 유럽은 물론,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핵심 플레이어로 등장한 러시아의 변모를 짚어본다. 

1991년 12월15일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물러온 '슈퍼파워'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당시 오늘의 러시아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옛 소련의 대외채무를 인수한 러시아 정부가 우리나라로부터 받은 30억달러의 경협차관을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가 그나마 관심이었다. 

91년 8월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가 무산된 후 모스크바의 옛 소련 연방의사당에는 적기 대신 볼셰비키 혁명 전의 러시아 국기인 청홍백의 삼색기가 휘날렸다. 하지만 모스크바 거리에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좌절과 탄식만이 가득했다. 

"소련경제는 전 부문에 걸쳐 위기상황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시장은 와해되었고 루블화의 구매력 상실로 현물거래만이 성행하고 있다"는 91년 소련 국가통계위원회 실적보고서가 이를 말해준다. 

고르바초프의 집권 5년간 소련은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90년 3월 볼셰비키 혁명 후 처음으로 사유재산제를 도입했지만 혼란은 가중됐다. 중앙통제 기능이 무너진 상황에서 설익은 시장경제가 동토의 제국을 더 빠른 속도로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91년 쿠데타 직전 6개월간 국민총생산은 10%, 노동생산성은 11%가 감소했고 실업률은 25%선에 육박했다. 그 와중에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것이다. 

보리스 옐친이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새 대통령이 됐지만 러시아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옐친은 92년 초부터 가격자유화와 사유화 등 급진적인 시장개혁 정책을 펴기 시작했지만 보수파가 장악하는 의회와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그 사이 국민들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93년 6월·344%)에 시달려야 했고 국내총생산은 소련 붕괴 전인 89년과 비교해 10년 만에 44%가 감소했다. 

급기야 98년 8월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외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소련해체 10년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러시아 국민 72%가 "소련 붕괴를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할 정도로 몰락은 처참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중국·인도·브라질과 더불어 브릭스(BRICs) 국가의 한 축으로서 세계경제 침체 확산을 억제하는 굳건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러시아를 수렁에서 건져올린 것은 2000년대 초부터 몰아닥치기 시작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고유가였다. 국제유가가 모라토리엄 당시보다 10배 이상 오르면서 세계적인 석유(7위)와 천연가스(1위) 매장량을 가진 러시아로 막대한 '오일머니'가 유입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이를 도로·항만·공항 등 인프라 개선에 투자하면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2000년부터 지난 9년간 연평균 6.3%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러시아는 98년 모라토리엄 당시와 비교해 경제총생산은 10년 만에 6배가 늘었고 1인당 국민소득은 1852달러에서 1만달러(1만1690달러·2008년) 선으로 불었다. 

2008년 취임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크렘린궁에서 한 국정연설에서 "고유가로 돈을 벌던 시대는 갔다"면서 에너지 의존적 경제구조를 첨단 정보기술과 통신·원자력·우주산업으로 바꾸기 위한 '경제 현대화 개혁' 드라이브를 선언했다. 

외교적으로도 러시아는 거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푸틴이 2000년 7월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오랜 '숙적관계'를 청산하는 동시에 미국의 패권주의에 공동대응하는 '연합전선'에 합의하면서 기반을 다졌다. 

중·러는 2008년 79년간 끌어왔던 헤이샤즈 섬 영토분쟁에 합의하는가 하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구성, 정례적인 합동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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