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훈이 소설 ‘광장’ 100쇄를 찍은 것은 1996년 6월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6월에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100쇄를 찍었다. ‘광장’과 ‘난쏘공’의 100쇄 출간을 앞두고 두 작가를 하루 간격으로 인터뷰했다. 먼저 만난 것은 최인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최인훈은 “잡지 ‘새벽’에 ‘광장’을 발표한 게 60년이니 3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광장’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광장’을 군복무 중에 썼다고 했다. 25살 때였다. 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될 당시 76명의 포로들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 추방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광장’의 집필을 구상했다고 했다. 100쇄를 찍는 동안 3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최인훈은 왜 자신이 ‘광장’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했을까. 그는 61년 단행본으로 첫 선을 보인 ‘광장’ 서문에 이렇게 썼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 성난 민심, 정부 失政 심판무대 -
최인훈이 ‘광장’ 100쇄를 찍은 지 꼭 12년 뒤인 2008년 6월 청계광장과 서울시청앞 광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매일 밤 촛불이 넘실댔다. 광장은 굴욕적으로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성난 민심으로 들끓었다. 광장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오만, 독선을 심판하는 무대가 됐다.
광장은 오프라인에만 있지 않고 온라인에도 있었다. 미디어 다음이 서비스하는 아고라(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에서는 수많은 ‘아고리언’(아고라에 글을 쓰는 사람)이 한·미 쇠고기 협상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 자율화,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정책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려졌다. 아고라는 난상토론의 장(場)이자, 국민 의식화의 수단이 됐다. 반면 정부에게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약이 아닌 독’으로 여겨졌을 듯하다.
아고리언들이 인터넷 광장에 올린 글에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섣부른 단정처럼 맹목적인 반대와 격한 분노, 감정섞인 글들만 있지 않다. 이유있는 항변과 설득력 있는 논리, 차가운 이성이 존재한다. 아고리언들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인터넷 광장인 아고라에서 네티즌들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체득했고,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다. 오프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쳤다면, 온라인 광장에서 네티즌들은 ‘정제된 논리와 주장’을 요구했다.
그런 온·오프라인 광장을 이명박 정부는 원천봉쇄하려 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반미세력으로 규정하는 가당찮은 ‘색깔론’을 제기했다. 진보단체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아고라 죽이기에도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아고라에 게시된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들에 대한 불매운동 관련 글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리고, 게시물 80건 중 58건을 삭제했다. 조·중·동은 다음에 뉴스 제공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졸렬하고 저급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다. ‘닫힌’ 광장을 다시 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시국미사에서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회원로들은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 광장 막을수록 들불로 번질 것 -
최인훈은 소설 ‘광장’ 서문에 ‘광장을 막아버리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적었다. ‘광장을 막을 때 폭동의 피가 흐른다’고도 했다. 그가 ‘광장’을 ‘새벽’지에 발표한 48년 전인 1960년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4·19 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이승만 정권은 타오르는 혁명의 불꽃을 막지 못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시계추를 48년 전으로 돌리려는 듯 광장을 봉쇄하고, 촛불을 든 시민들을 곤봉으로, 소화기로, 물대포로 진압했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는 것을, 광장을 막을수록 성난 민심은 들불처럼 번져간다는 것을, 국민의 뜻을 외면한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박구재 경제부장>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아이디어의 보물섬! 한국아이디어클럽(www.idea-club.com)
당시 최인훈은 “잡지 ‘새벽’에 ‘광장’을 발표한 게 60년이니 3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광장’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광장’을 군복무 중에 썼다고 했다. 25살 때였다. 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될 당시 76명의 포로들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 추방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광장’의 집필을 구상했다고 했다. 100쇄를 찍는 동안 3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최인훈은 왜 자신이 ‘광장’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했을까. 그는 61년 단행본으로 첫 선을 보인 ‘광장’ 서문에 이렇게 썼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 성난 민심, 정부 失政 심판무대 -
최인훈이 ‘광장’ 100쇄를 찍은 지 꼭 12년 뒤인 2008년 6월 청계광장과 서울시청앞 광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매일 밤 촛불이 넘실댔다. 광장은 굴욕적으로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성난 민심으로 들끓었다. 광장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오만, 독선을 심판하는 무대가 됐다.
광장은 오프라인에만 있지 않고 온라인에도 있었다. 미디어 다음이 서비스하는 아고라(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에서는 수많은 ‘아고리언’(아고라에 글을 쓰는 사람)이 한·미 쇠고기 협상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 자율화,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정책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려졌다. 아고라는 난상토론의 장(場)이자, 국민 의식화의 수단이 됐다. 반면 정부에게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약이 아닌 독’으로 여겨졌을 듯하다.
아고리언들이 인터넷 광장에 올린 글에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섣부른 단정처럼 맹목적인 반대와 격한 분노, 감정섞인 글들만 있지 않다. 이유있는 항변과 설득력 있는 논리, 차가운 이성이 존재한다. 아고리언들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인터넷 광장인 아고라에서 네티즌들은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체득했고,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다. 오프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쳤다면, 온라인 광장에서 네티즌들은 ‘정제된 논리와 주장’을 요구했다.
그런 온·오프라인 광장을 이명박 정부는 원천봉쇄하려 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반미세력으로 규정하는 가당찮은 ‘색깔론’을 제기했다. 진보단체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아고라 죽이기에도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아고라에 게시된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들에 대한 불매운동 관련 글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리고, 게시물 80건 중 58건을 삭제했다. 조·중·동은 다음에 뉴스 제공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졸렬하고 저급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다. ‘닫힌’ 광장을 다시 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시국미사에서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회원로들은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 광장 막을수록 들불로 번질 것 -
최인훈은 소설 ‘광장’ 서문에 ‘광장을 막아버리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적었다. ‘광장을 막을 때 폭동의 피가 흐른다’고도 했다. 그가 ‘광장’을 ‘새벽’지에 발표한 48년 전인 1960년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4·19 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이승만 정권은 타오르는 혁명의 불꽃을 막지 못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시계추를 48년 전으로 돌리려는 듯 광장을 봉쇄하고, 촛불을 든 시민들을 곤봉으로, 소화기로, 물대포로 진압했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는 것을, 광장을 막을수록 성난 민심은 들불처럼 번져간다는 것을, 국민의 뜻을 외면한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박구재 경제부장>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아이디어의 보물섬! 한국아이디어클럽(www.idea-club.com)
'아이디어클럽 > 유머 아이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m 높이로 쌓은 ‘삼양라면 산성’, 독재항거 영화 패러디 ‘가면시위’ (0) | 2008.07.07 |
---|---|
촛불 “계속하자” vs “이쯤에서…” (0) | 2008.07.07 |
종교간 화합·아대련 출범… 평화집회로 마무리 (0) | 2008.07.07 |
서울광장 천막 철거하고 또 봉쇄 (0) | 2008.07.07 |
항의서 칭찬으로…광고압박운동 또 진화 (0) | 2008.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