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이 말을 남김으로써 그의 사후 2천500년동안 벌어진 무수히 많은 철학적 논쟁중 가장 으뜸인 테마, 즉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논쟁의 근원을 제공했다.

흔히 프로타고라스의 이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인본주의적 사상의 근원으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그는 우리 인간의 인식에 대한 철저한 회의를 제시했다.

약 2천400년 뒤인 20세기 초 회의론적 인식론의 거두(巨頭) 데비이드 흄은 프로타고라스를 빌어 우리 정신과 진리의 대한 막연한 믿음을 부인하게 된다. 그에 따르면 영원한 필연적 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우리가 연속된 사건을 관찰해 얻은 관습의 결론일 뿐이다.

높은 이상과 신(神)에 대한 믿음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의 궤변에서 부인된뒤 그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흄을 비롯한 회의론자들에 의해 해부당하고 만 것이다.

그 오랜 세월동안 이 이슈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요즘 국제금융시장을 보면 거시적 패턴 측면에서의 `규칙성'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이에 따른 투자전략 측면에서의 `신념'이라는 건 존재하는 건지, 많은대가들이 각 금융시장에서 언급했던 기초적인 법칙들이 유효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표도 실적도 전략도 `왔다 갔다'= 미국 주요 은행들의 실망스런 분기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지난 수개월의 상황에 비해 실적이 악화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안도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아니러니한 상황이다.

JP모건체이스가 발표한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대단히 비관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실적발표 당일(17일) 6.7%나 급등했으며 주택가격 하락세로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발표한 웰스파고의 주가 역시 같은 날 4.3% 올랐다.

지난 주말(18일) 씨티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 1.4분기중 50억달러가 넘는 순손실을 입었고, 160억달러 가까운 자산상각과 신용손실로 적자를 기록해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주가는 5% 가까이 오르며 `예상보다 적은 손실'에 화답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금융주의 움직임은 이달 초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전년 동기 대비 1분기 순이익이 6% 감소했다고 발표하자 증시가 급락세를 나타냈던 것과 상반된 움직임이다.

실적은 악화됐지만 전문가들의 예상보다는 좋게 나오면서 신용위기가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증시의 상승을 이끈 것이다.

그러나 금융계가 지난해 여름 신용위기가 불거진 이후 조속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여러 차례 나타낸 것은 `구차스러운 낙관론'에 불과하다. 그만큼 현실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수개월 간 금융계가 최악의 상황을 겪었던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발표되는 분기실적, 특히 금융권의 실적 내용은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보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경기 지표쪽도 마찬가지다. 4월 소비자태도지수가 26년래 최저치를 나타냈다고 발표됐을 땐 곧 증시가 붕괴될 듯이 움직이다가 지난 주 4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제조업지수가 23P 급등했을 땐 경기후퇴가 끝난 것처럼 환호하는 시장을 과연 이성적인 상태로 봐 줄 수 있는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된다.

◆최강자 JP모건에 대한 의심= 펑크 지젤의 리처드 보브 애널리스트는 JP모건 실적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 일침을 가한다. 전년의 절반으로 줄어든 순익 실적 발표에 주가가 7% 가까이 오른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베어스턴스 인수를 자처하며 월가의 영웅이 된 듯 하던 JP모건은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60억달러를 모금 계획을 조용히 신고했다.

이 금액은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모집 규모로 볼 때 JP모건 역사상 가장 많은 수준이다. 또 발행조건인 고정금리 7.9%는 비싼 수준으로, 이자 지급만 1년에 4억7천400만달러다. 이 금리로 3년간 이자를 지급할 경우 베어스턴스를 살 수 있는 정도다.

과연 이런데도 JP모건의 1분기 실적이 양호했다고 시장이 해석해야 했었는지 리처드 보브는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JP모건이 절실하지 않았던 이상 이 상황에 자금 조달에 나섰겠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JP모건체이스가 홈에쿼티론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8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한 상황이다.

◆알 수 없는 미국 금융당국의 속내= 미국 연준리(FRB)와 정부, 정치권의 금융정책 당국자들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통일된 방향성을 어느 때보다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표적인 매파 성향의 위원인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주 금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악화시킬 뿐이라고 역설했다. 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프레데릭 미시킨 FRB 이사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하반기에 경제성장률이 회복되겠지만 경기의 추가 부양이 필요하다면 FRB는 금리를 더 인하할 여지가 있다며 경기부양책이 2~3달내에는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미국 경제가 경기둔화의 시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전문 언론과 기관들은 경기부양과 인플레이션의 위험성 사이에서 갈팡질팡고민하는 모습이 어느때보다 역력하다.

미국 5대 경제 예측기관 중 하나인 UCLA 앤더슨경제연구소의 에드워드 리머소장은 "경기 침체는 없다"고 보고서를 내놓았다. 예측이 틀리다면 사직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터이다. 그의 이런 예측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라고 말한 조지 소로스나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에 접어들었다고 공언한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 등 의견과는 다른 것이다.

경제학자인 헨리 카우프만은 FRB가 지난 15년간 과도한 유동성 팽창을 허용해 시장의 혼란을 가져왔고, 이번 금융위기의 확실한 특징은 이전 시기에 비해 공적인 감독 및 규제가 크게 실패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경기후퇴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전미경제조사연구소(NBER) 소장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경제가 지난해 12월이나 올해 1월 이래 경기후퇴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한 반면 토티 프래토 백악관 대변인은 "아직 경기부양책이 효력을 발생하기도 전에 2차 경기부양책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해 경기후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다음 주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가 열린다. 일단 FOMC위원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고 가는 순서가 됐다.

미국의 금융정책에는 현재 `사공이 너무 많거나' `아무도 리더가 없는' 그런 상황이다. 그만큼 현 상황이 보편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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