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덕 신임 금융감독위원장이 어제 취임했다. 전임 윤증현 위원장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남에 따라 3년 만에 금감위와 금감원의 사령탑이 바뀐 것이다.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금융시장의 생리를 고려하면 실로 오랜만에 이뤄진 인사다. 리더가 오랜만에 바뀌면 굳어진 조직의 변화를 꾀하고 정책면에서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좀 이상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신임 위원장은 새로운 일을 추진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달라는 식의 주문이 일부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포장은 ‘정권 말기를 맞아 기존 정책을 마무리하는데 신경 써달라’는 점잖은 표현이지만 속 뜻은 그런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그의 경력에 덧대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말기라고 해서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이 스스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정책현안이 새 정권 출범 때까지 숨을 멈추지도 않는다. 자신이 단명하리라 예단하고 소극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리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평소에는 경제가 정치에 영향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정권말기이니 새 일 벌이지 말라는 모습이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새 금감위장 조용히 있으라니-

김위원장이 어떤 자세를 보일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지만, 금융당국 스스로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뜯어고치는데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하면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금융시장 안정이 정책의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지만 그것이 볼모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금융당국은 평상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한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부실이 문제가 돼 시장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닥치면 수술이라는 원칙을 포기한다. 상처가 아무는 고통스러운 기간을 감내할 자신이 없을뿐더러 부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이 때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시장 안정이 볼모가 된다. 금융시장이 불안에 빠지면 경제가 잘못될 수도 있는데 누가 책임질 거냐고 나온다. 신용카드 사태가 아주 좋은 예다. 시장안정을 위해 벼려놓은 칼을 시장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용하지 않는 모순이다.

금융회사들이 바른 방향으로 경영하지 않고 제살깎기식 과당경쟁을 벌이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시장에 의해 심판받게 하기보다는 일일이 손을 잡아 끌고 다니며 시시콜콜 관리하려 든다. 이 때도 역시 명분은 시장안정이다. 과당경쟁으로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시장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금융회사들은 겉으로는 당국의 간섭이 귀찮다고 손사래치면서도 속으로는 당국이 곧 나서서 교통정리해주겠지 하면서 소모적인 경쟁을 일삼는다. 국내 은행들이 차별성 없는 영업전략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외형경쟁을 하는 것은 시장안정을 이유로 튀지 못하도록 길들여놓은 금융당국 탓이 크다.

시장안정을 내세워 금융을 무슨 성역시 하는 일종의 권역 이기주의도 깨야 한다. 부동산 값 폭등으로 온 나라가 열병을 앓을 때 금융당국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계속 반대했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은행이 부동산 중개업소에 대출알선 수수료를 지급하면서까지 대출 세일에 혈안이 되고, 새로 산 아파트를 담보잡혀 다시 아파트를 사는 투기광풍의 실체를 외면했다. 권역 이기주의에 빠진 저항이었다. 좀더 빨리 돈줄을 조이는 정책이 나왔더라면 부동산 시장의 안정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고의성 있는 회피에 의해 정책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책의 타이밍 놓쳐선 안돼-

소비자 관련 제도를 개선할 때도 소비자 권익보다는 금융회사의 경영수지를 더 고려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금융회사의 수지가 악화되면 시장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그래서 소비자가 손해를 볼 만큼 보고 여론의 질타를 받을 만큼 받고서야 마지못한 듯 개선책을 내놓는다. 펀드 수수료가 터무니없다는 여론이 들끓은 지 1년반이 넘어서야 인하 유도 대책을 내놓은 것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금융당국의 이런 자세가 금융회사와의 공생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서배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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