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1라운드 게임을 마치고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1라운드는 각국 금융회사들의 투자손실 공개, 주식시장 충격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들의 적극적 대응으로 일단락된 느낌이다. 2라운드 게임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이란 미명 하에 수행되는 '희생양 찾기' 게임이다.

벌써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희생양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자산유동화, 신용파생상품 그리고 헤지펀드가 그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서브프라임과 관련한 은행 부실화의 원인으로 자산유동화를 지목했다. 올바른 진단인가. 아니다.

부실화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있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허용해 부동산 붐을 일으키고 소비확대를 꾀한 경제정책이 비난받아 마땅하다.

왜 위험분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자산유동화를 탓하는가. 왜 높은 위험을 부담하며 상응하는 이익을 추구한 헤지펀드를 비난하는가. 자산유동화와 헤지펀드가 인격을 가졌다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사람만 토사구팽 당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따져 보자. 모기지 유동화가 없었다면 미국에서 그 많은 사람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린스펀 말대로 신용파생상품이 없었더라면 엔론사태 때 미국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지 않았을까. 헤지펀드가 없었다면 유동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짜닌증권이나 후순위채권을 누가 그렇게 과감히 인수했을까.

'희생양 찾기'에서는 규제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득세하기 마련이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에 항상 그래왔다. 문제는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금융기법들이 한국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혁신 및 중소기업금융의 핵심인 자산유동화, 신바젤협약 하에서 신용위험을 전가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신용파생상품이 대표적 예다. 자칫 한국이 금융 선진국 사다리 걷어치우기의 희생양이 될까 걱정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불안정성 자체를 없애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금융위기 대응정책의 기본은 위험요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어디서 어떻게 단절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수천 ㎞가 넘는 송유관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은 이를 수백 개 구간으로 나누어 교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금융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자산유동화를 통한 위험 이전을 차단하려면 '진정한 매각'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면 된다. 신용평가사가 정확한 신용등급을 매기고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위험차단장치다.

은행, 증권사 그리고 저축은행의 과도한 유동화증권 투자가 문제가 된다면 재무건전성 규제에서 위험가중치를 높여 관리하면 된다. 위험차단장치면 족하지,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의 핵심 기반인 자산유동화시장 자체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 충격을 악화시키는 것은 레버리지(차입)다. 레버리지는 다양한 형태로 경제시스템에 내재돼 있다. 주식투자와 관련한 레버리지는 신용거래다.

이번 경우처럼 감독당국이 선제적으로 신용거래 축소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자산유동화에서는 자산보유자의 후순위채권 보유허용비율이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헤지펀드도 몇 십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사용이 문제다. 헤지펀드를 제도화할 때 과도한 레버리지 사용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레버리지와 집중위험이 결합되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롱텀캐피털(LTCM) 위기 때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러시아 위험에 직면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서로 다른 부서에서 러시아국채 투자, 러시아 기업에 대한 대출, 러시아 포지션이 높은 헤지펀드에 대한 자금대출 등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금융의 세계화 시대, 금융회사 위험관리에서 특히 신경 쓸 분야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희생양 찾기' 과정에서 한국 금융산업에 예기치 않은 먹구름을 가져올 수 있다. 강도 사건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강도가 사용한 칼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칼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무디게 하는 처방이 나오면 칼로 먹고사는 요리사는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작금의 한국 금융산업은 금융혁신이라는 예리한 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금융산업이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것이 진짜 위기다. 금융정책 및 감독당국의 줏대 있고 지혜로운 대응이 요구된다.

금융회사들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축소했던 부실채권 및 부실기업 부문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실로 한국의 금융회사에 시사하는 바 크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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