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검찰총장이었던 엘리엇 스피처는 월가 증권범죄를 끈질기게 추적한 행위로 '월가의 저승사자'라 불렸다. 2003년 뉴욕 검찰은 매매 시기를 소급해 부당한 이익을 보던 뮤추얼 펀드 캐너리 캐피털을 수사해 캐너리가 수사에 협조하기로 하고 4000만달러를 내는 데 합의했다. 그후 아메리카은행 등 수십 개 금융기관들이 처벌을 받았다. 이런 과정들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증권시장의 반칙행위자들을 걸러내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늘 수사팀을 독려하지만 야근이나 휴일근무가 일상화된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왜 우리는 증권사범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까?

얼마 전 검찰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한 루보 사건은, 주가조작이 진행 중일 때 검찰이 개입하여 4개월 만에 1차 수사가 마쳤지만 보통은 검찰수사만 해도 1년 내외가 걸린다. 중간급 사건은 전화사실 조회 3~4회, 계좌추적 등 압수영장 4~5회, 체포영장 4~5회 정도가 필요하다. 미국과는 달리 이 모든 게 판사의 영장이 필요하므로 수사기록이 건마다 법원에서 1박 2일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엄격한' 심사로 일부라도 기각되면 그 부분 자료를 보완하여 다시 받아내는 데 또 여러 날이 걸린다. 미국에서는 이 모든 게 판사의 영장없이 진행된다.

어느 정도 수사가 마무리되면 협상(Plea Bargain)을 통해 처벌수위를 합의한다. 조디 포스트 주연의 '피고인'에는 '강간의 공범'에서 '단순 폭력행위'로 합의하는 현실감 있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후 판사의 확인을 거쳐 재판절차 없이 그대로 확정된다. 심지어 2003년 SSB증권은 벌금 외에 '리서치와 투자은행 부문의 분리, 투자자 교육'을 검찰과 합의해 우리로 치면 금융감독원의 권고사항쯤 되는 것이 수사결과로 나온다.

미국이 우리보다 효율적인 것은 미국시민의 인권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상황과 끔찍한 테러를 겪은 경험이 원인일 것이다.

우리는 해방 후 영장주의가 들어와 더욱 확대되어 왔다. 이제 사회 각 부문의 민주화나 언론과 시민단체의 견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만큼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보다 시민 안전을 더욱 우선하여 일을 하게끔 하는 절차 마련을 기대해 본다.

[강찬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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