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사내 메일시스템엔



한국어 입력 기능도 없어



구매.인사자료도 영어로



“콩글리시, 정말 힘드네….”

이명박정부가 청소년들의 영어 경쟁력 강화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천명한 가운데 기업들도 ‘콩글리시’ 실력을 높이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콩글리시는 흔히 말하는 ‘한국식 엉터리 영어’가 아니라 기업을 뜻하는 ‘코퍼러트(Corporate)’와 영어를 뜻하는 ‘잉글리시(English)’를 합성한 조어다. 외국인 임직원이 늘어나고 글로벌 경영이 일상화되면서 영어 회의, 영어 문서 작성이 기업에서만큼은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기업 내 소통언어는 이미 영어



=지난달 21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올해 회사의 글로벌 경영 전략을 소개했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외국인 투자자 대상 IR 자리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한국인 LG전자 직원이었다. LG전자 관계자는 “특정 부서만 영어를 쓰는 단계에서 이제는 몇몇 부서만 한국어를 쓰는 단계로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외국인 직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부서는 모든 회의를 영어로 진행한다. 최고경영진이 모인 회의에서도 영어가 공용어다. 말뿐 아니다. 내부 보고자료 역시 영어다. 사내 메일 시스템에는 한글 입력 기능조차 없다. 조만간 인사, 구매 등 사내 모든 규정도 영어로 만들 예정이다. 2010까지 부서마다 1명 이상의 외국인을 채용하고 구매와 인사, 마케팅은 최고경영책임자부터 외국인으로 임명하겠다는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가 만든 변화다.

최근 외국 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한 두산도 3년 후에는 모든 업무를 영어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그룹 연수원인 연강원을 통해 사이버MBA 교육을 독려하고 있다. 또 일본어와 중국어 등 제2외국어 교육에도 열심이다. 이런 외국어의 일상화는 내수 기업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의 랭귀지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직원 개인별로 외국어 목표를 설정하면 회사는 이에 맞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목표 달성 시 회사는 직원에게 10만원을 지급하고, 반대로 미달 시에는 직원이 같은 금액을 사회봉사기금으로 기부한다.

기업들의 영어 생활화는 관련 교육업체 호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률교육 관계자는 “2004년 20개에 불과했던 콘텐츠 대량 구매가 지금은 170개까지 늘었다”며 “이 중 85% 이상이 기업에서 주문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인수위원회의 영어 교육 강화 방침이 알려지면서 단체 구매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영업부서가 아닌 곳에서도 하루 수십통씩 영어 콘텐츠 판매 문의전화를 받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영어 스트레스에 진풍경 만발

=이런 기업들의 영어 열풍이 불러온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1시간을 넘기 일쑤던 회의시간이 영어 공용화 이후 10분으로 짧아지고 평균 10장이던 보고문서도 1~2장으로 그 양이 부쩍 준 것. 영어 사용 의무화라는 회사 방침을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하지만 아직은 우리 말과 글이 더 편한 까닭이다. 한 직원은 “영어 공용화를 하자는 건지, 종이 낭비를 막겠다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다”며 씁쓸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직원들의 영어 스트레스도 문제다. 모 외국계 기업 입사 8년차인 양모 과장의 일상은 이 같은 영어 열풍의 스트레스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4년 전 회사가 외국계 펀드로 넘어가며 시작된 그의 영어 스트레스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학원 새벽반 수강증도 끊어보고 미국에서 살다온 후배에게 개인교습도 부탁해봤지만 매일매일 터지는 일에 몸과 시간이 마음만큼 따라주질 않는다. 양 과장은 “영어를 못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 형편”이라며 “영어를 잘하는 후배에게 개인교습을 받기도 했지만 쉽지 않다”고 동료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일반직원뿐 아니다. 영어 공용화를 결정한 임원들조차도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모 그룹의 한 임원은 영어 스트레스에 10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임원은 매일 아침 자신의 방에서 외국인 강사에게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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