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CEO / 금융 실크로드 개척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대해 물질만능주의의 대명사 격인 증권업계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워낙 부드럽고 '의리'를 중시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유 사장을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평가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치밀함과 추진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반론을 내놓는다.

올 4월 한국증권 사장에 오른 그는 지난해 베트남 펀드 열풍의 주역으로 여의도 증권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7년 가까운 영업활동을 한 때문에 '국제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리더십에 대한 경쟁력을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옛 동원증권과 옛 한투증권이 통합된 한국증권을 이끌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유 사장에 대한 평가는 부드러움과 강함, 전문성(스페셜리스트)과 통합성(제너럴리스트) 등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냥 '프랙티컬(practical)'한 사람"이라고 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 그는 이어 "원래 주식투자의 첫째 덕목은 장기 투자고 둘째는 위험관리 아닙니까"라면서 "저도 이 두 가지 원칙에 맞춰 오버하지 않고 또 무리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985년 옛 한일은행에 입사해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딘 유 사장은 이후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증권맨'으로서 삶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증권업계에 입문할 당시 세웠던 목표가 바로 '증권사 사장'이라는 것이다.

"장기 목표를 세우고 장기 투자를 시작한 셈이지요. 80년대 말엔 신입사원이 증권사 사장이 되기까지 25년 넘게 걸렸는데요. 전 그때 20년 안으로 시간을 단축해 보자,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19년 만에 사장이 됐으니까 '목표수익률'은 달성한 것 아닙니까."

유 사장은 이 19년간을 리스크 관리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대리였지만 마음 속으로 '난 사장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대리는 다르다"며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 순간의 행동들은 분명 남들과 다르게 된다"고 말했다.

런던 시절은 더 큰 리스크 테이킹이었다. 1992년 국내 증시가 외국인에게 개방됐을 때 그는 바로 런던행을 결심했다. 선진 금융기법을 현장에서 배워 보자는 목표도 있었고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한 도전이기도 했다.

" '고위험 고수익' 아닙니까. 외국인 상대로 한국 주식을 세일즈했던 그 시절, 힘들긴 했지만 많은 걸 배웠어요. 97년 아시아 금융권이, 98년 러시아가 넘어지는 것을 외국에서 지켜보면서 더 냉철해질 수도 있었고요. 특히 계산에만 능숙한 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 명씩 내 고객으로 만드는 그 순간의 감동과 자신감은 큰 힘이 됐습니다."

'레전더리(Legendary) 제임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유 사장은 무려 6년간 공들여 쿠웨이트투자청을 고객으로 끌어온 사건은 아직도 유명한 일화다.

그는 "일부 외국 펀드매니저는 휴가를 떠나면서 자신의 '북(bookㆍ주식자산)'을 내게 맡기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라면서 "세일즈는 시간은 걸려도 결국 마음을 사로잡는 게 최고"라고 강조했다.

1999년 귀국한 유 사장은 바로 대우증권을 떠났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참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던 시기였다"면서 "하지만 다른 증권사에서도 이만큼의 열정을 쏟아부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메리츠증권을 거쳐 옛 동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6월 옛 한투증권과의 통합으로 한국증권의 일원이 됐다. 이어 바로 기다렸다는 듯 베트남 프로젝트를 터트렸다.

"2000년 7월이었죠? 베트남에 호찌민거래소가 개장했다는 뉴스에 무릎을 쳤죠. 저곳에 먼저 가야겠다고요. 이후로 5년간 리서치를 더 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증시와 부동산시장 공략에 나선 것입니다. 금융도 이젠 글로벌화에서 승패가 납니다. 우리도 속속 나가야 합니다."

최근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펀드, 부동산 직접투자 등 방법은 다양하다. 올해 순익 목표인 4600억원 달성이 무난한 터라 해외 사업에 더 많은 자신감이 붙은 것도 사실이다.

유 사장과 관련해 빠지지 않는 평가 중 하나는 바로 '술'이다. 주량 파악이 안 될 정도라는 후문. 유 사장은 "한국증권에서 김남구 부회장 다음으로 잘 마신다고 보면 된다"며 웃었다. 아예 '임원 회식을 하면 모든 임원들이 다 쓰러질 때까지 마시다가 중요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유 사장과 김 회장 두 명이 나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요즘엔 신입사원을 뽑느라 매우 바쁘다고 했다. 증권업계가 호황이라 정말 좋은 인재가 많이 몰려온다고도 했다. 그럼 유 사장이 생각하는 증권사 인재상은 어떤 모습일까.

"개인적으로 미국 베어스턴스의 'PSD' 기준을 좋아합니다. 가난하고(Poor), 똑똑하며(Smart), 부자가 되고자 하는 강한 욕망(Deep desire to become rich)을 가진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반드시 CEO가 되겠다는 신념까지 갖고 있으면 최상입니다."

10여 년 후 증권사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새겨들을 만한 충고다.

■ He is…

'최고의 국제통' '금융 실크로드 개척자' '최연소 증권사 CEO' 등 다양한 수식어가 유상호 사장을 대변한다. 유 사장은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메리츠증권, 옛 동원증권을 거쳤고 1992~1999년 런던에서 국제영업 및 국제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행복경영'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1960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MBA)을 졸업했고 현재 부인 김소연 씨와의 사이에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정철진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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