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MB노믹스'(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철학)의 개혁 성향을 대변한다."(교수 출신 인수위 관계자)

"국정(國政)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관료 출신 인수위 관계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경제분야에 참여 중인 관료 출신과 교수 출신 인사들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연령대에서도 관료 출신 그룹은 60대 전후, 교수 출신은 50대 안팎으로 세대 차이가 난다.

관료 그룹과 교수 그룹은 주요 경제 정책의 방향과 로드맵(이행방안)을 둘러싸고 각각 신중론과 개혁론의 대립축을 형성하고 있다. 관료그룹은 현실론, 교수그룹은 이상론 쪽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수위 주변에선 언젠가 이들의 입장차가 수면 위로 분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까지는 양측의 입장차가 인수위 내부의 논의를 통해 대부분 원만하게 조율돼 나오고 있다. 겉으로 마찰음이 크게 나지는 않는 '냉전(冷戰)' 양상인 셈이다.

◆60대 관료출신 대(對) 50대 교수출신

관료 그룹의 축은 사공일(67)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강만수(63) 경제1분과 간사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현실적인 실행 방안 마련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 당선자의 공약은 약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보이기도 한다.

교수 그룹의 핵심은 이 당선자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곽승준(47) 기획조정분과 위원이다. 또 이창용(47) 서울대 교수, 백용호(51) 이화여대 교수 등이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다.

교수 그룹들은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자는 쪽에 정책 비중을 맞추고 있다. 또 대선 공약 중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된 부분은 공약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수정하자는 입장이 강하다. 대부분 이 당선자가 설립했던 '동아시아연구원'의 후신인 '국제정책연구원(GSI)' 출신이다.


◆주요 정책마다 입장 엇갈려

가장 먼저 경제 부처 조직 개편에서 입장이 갈렸다. 사공일 위원장은 작년 말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정책의 기획조정 기능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교수 그룹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으로 본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교수 그룹은 옛 재경원 같이 한 부처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에 부정적이다. 결국 경제부총리는 폐지하지만,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예산권을 가진 경제정책 부서를 만드는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 양측의 의견이 절충된 셈이다.

이처럼 지난 2일부터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거론된 주요 경제 정책들은 대부분 양측의 입장이 비슷하게 반영되는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금산분리(金産分離·기업 등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제도) 완화도 마찬가지다. 교수측은 "연기금은 물론이고 컨소시엄 방식 등으로 기업들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관료 그룹은 "금산분리는 완화해야 하지만,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다른 생각을 보였다. 결국 "구체적인 완화 범위 등은 앞으로 계속 검토한다"는 절충이 이뤄졌다.

다만 신용불량자 대사면 공약은 교수 그룹이 주도권을 쥐었다. 관료측 장수만 전문위원은 당초 "10조원은 안되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해결하겠다"고 브리핑을 했지만, 곽승준 교수 등의 주장대로 7000억원 정도의 초기 자금으로 시작하는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팽팽한 힘겨루기

지난 7일 재경부 업무보고 때는 곽승준 교수가 강만수 간사에게 보낸 메모가 사진으로 찍혔다. 메모에는 "산은 민영화는 저희 쪽에서 수위조절하여 브리핑…"이라는 내용이 실려있어 언론 발표 등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를 감지케 했다.

당시 재경부 보고 후 인수위 내부에서는 "마치 강만수 간사가 재경부장관처럼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분위기였다"는 말이 돌았다. 재경부 차관 출신인 강만수 간사가 익숙하게 업무보고를 진행했다는 얘기다. 이 당선자도 이런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 그룹에선 곽승준 교수에게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인수위 내부에서는 "인수위 최대 현안인 정부조직 개편의 경우 당선자 외에 딱 2명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중 1명이 곽 교수"라는 말이 나온다.




[이진석 기자 isla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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