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를 계기로 미국에서 금융소비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문맹퇴치위원회가 구성되고 의장에 증권업계의 거물인 찰스 슈워브 씨가 임명됐다고 한다. 또 미국 의회는 이번 4월을 금융문맹퇴치의 달로 지정했다고도 한다.
이런 움직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문맹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이번 사태의 뇌관으로 작용한 상품은 금리가 조정되는 모기지다. 이 상품은 처음에는 낮은 수준의 고정금리를 적용하다 2년 후부터는 높은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많은 소비자가 나중에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초기 금리가 낮은 데에만 현혹돼 과도하게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 감독당국이나 정치권의 판단이다. 금융지식이 모자란 소비자들이 이른바 ‘미끼 금리’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기 어렵다. 금리구조 자체로만 보면 특별히 소비자에게 불공정하다고 하기 어렵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금리보다 금리가 높은 것은 불가피하다.
美 모기지사태 금융지식 부족 탓
또 장기적인 금리 예측이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우선은 고정금리로 하다가 일정 기간 이후에는 시장금리에 연동시키는 것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는 물론이고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들까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도 상품 자체가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감독당국이나 정치권의 판단대로 소비자들이 나중에 금리가 올라간다는 점을 모르고 당했다고 단정 짓기도 쉽지 않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인쇄된 대출계약서에 포함된 금리구조를 이해하지 못해서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대출을 받은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많은 사람은 금리구조를 이해하고도 투기심리에서 위험한 베팅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탄의 대상인 투기와 장려되는 투자 사이에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고 투기도 순기능을 가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투기를 하는 사람은 높은 기대수익률만 볼 것이 아니라 수반되는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기대수익이 크면 리스크도 크기 마련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집값이 올랐을 때 돌아올 높은 수익만 볼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집값이 하락하면 닥칠 손실도 같이 따져보고 그런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심사숙고해서 차입금으로 집을 샀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차입금으로 주식을 샀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 차입금으로 강남에 아파트를 샀다가 이자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으로 한숨을 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가가 올라갈 때 높은 수익을 내는 상품이라면 그것이 은행에서 파는 것인지 증권사에서 파는 것인지, 또 보험상품인지를 불문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왕왕 있다.
금융소비자 교육이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교육으로 어떤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됐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소비자 교육에 앞서 금융회사가 상품을 단순하게 만들고 소비자에게 쉽게 설명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금융상품의 진화를 억제함으로써 금융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또 금융회사의 관리비용을 지나치게 높이고 이는 결국에 모든 소비자가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소비자경제 교육이 위기 예방책
교육이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금융소비자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금융을 이용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또 금융지식의 결여로 인한 문제는 다른 어떤 지식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교과서가 일반인이 평생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할 내용을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중 일부를 덜어내고 기초적인 금융지식을 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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