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합법·투명성 갖추고

글로벌기업 위상에 맞는 경영체계 쇄신 이뤄야


삼성 특검이 시작된 지 100여 일 만에 마무리되고 있다.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특검장에 불려다니는 이건희 회장의 참담한 모습을 보며, 국민들 마음 또한 착잡했다. 수출과 시가총액이 나라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그룹의 총수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게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그것도 경제규모가 세계 12위인 이 땅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할 전근대적인 경영관행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삼성은 물론 한국의 글로벌 이미지도 상당히 추락하였고, 국내 경제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촌각을 다투는 관련 기업들에도 많은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 끝난다고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현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삼성이 세계가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획기적인 경영 쇄신책을 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삼성은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고, 자랑스런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가를 가름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내부 고발자나 시민단체를 탓하기에 앞서 문제는 역시 삼성이 스스로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그동안 삼성이 도마 위에 올라 온갖 수모를 겪은 원인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오랫동안 법적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경영권 승계, 낮은 소유지분을 순환출자로 연결한 지배구조, 그리고 내부 폭로로 알려진 불투명한 비자금과 경영관행이다. 일부는 무혐의로 법적인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나거나, 과거의 관행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하였다. 우선 적법한 사법절차에 따라 편법증여의 오명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편법이라면 지금이라도 정상화시켜야 하며, 어떤 법적인 응징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적법한 절차에 따라 글로벌 기업다운 지배구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존경받는 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유와 지배구조의 모델은 다양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지주회사로 가거나, 휴렛 팩커드(HP)나 발렌베리(Wallenberg) 모형처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거나, 아니면 경영능력에 따라 가족의 전문소유(professional ownership)도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각양각색의 소유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론몰이로 특정한 체제를 제시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주장이다. 어떤 전문가도 최상의 모델을 쉽게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기업과 사회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사회적 관심은 오히려 특정한 모델이 아니라 합법성과 투명성에 있어야 한다. 투명한 방법으로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는 체제를 정립한다면,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거기에 경쟁력까지 갖춘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장 경영체계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회장이 밝힌 경영체계의 쇄신과 함께 전략기획실의 개편, 그룹과 계열 기업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대안만으로는 역부족이다.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고도 빛을 보지 못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은 한 차원 더 높게 세계적 위상에 걸맞은 "삼성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모두 곤혹스럽고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없이 어떻게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겠는가.

이번 특검이 종료되는 것을 계기로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도 함께 정리되어야 한다. 위법성 여부는 법치국가의 성숙한 시민답게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고, 근거 없는 폭로로 대기업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그것을 교과서처럼 인용하는 행태도 시정되어야 한다. 불법로비의 온상이 되어왔던 각종 규제와 지주회사의 전환을 가로막는 비현실적인 제약도 풀어야 한다. 사회정서도 기업의 글로벌 경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자랑스런 글로벌 기업도, 기업을 아끼는 문화 속에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정갑영 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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