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소니에 눌렸던 닌텐도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DS'란 게임기다. DS는 작년에 5초당 1대씩 팔리며 세계에서 5000만대 이상 팔렸다. DS가 세계 게임시장을 휩쓴 것은 전통적인 게임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게임은 청소년들만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DS는 쉽고 유익해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은 작년 초 한국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적은 소니가 아니라 게임을 즐기지 않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장담대로 DS는 고객층을 청소년에서 여성, 노인층으로까지 넓혔다. 청소년용 단순한 게임기에서 전 연령층이 즐기는 오락기기가 됐다.

창의와 혁신 등 끊임없이 새로운 경영화두를 제시해온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근 삼성전자가 본받을 만한 히트상품으로 닌텐도 DS를 들었다. 그는 DS의 경우 오락용에 불과하던 휴대용 게임기를 두뇌 개발 및 영어학습용으로 발전시킨 점을 높이 샀다.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친정인 애플에 복귀해 만든 아이팟 역시 MP3의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린 혁신적인 제품이다. 기능은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심플한 디자인과 편리하게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는 아이튠과의 접목은 MP3의 영역을 음악기기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한 제품은 소니의 워크맨도 빼놓을 수 없다. 1979년 세상에 처음 나온 워크맨은 주머니나 가방에 들고다닐 수 있는 전자제품으로 단숨에 시장을 휩쓸었다. 소니는 워크맨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에 이은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이렇듯 인간의 상상력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며, 오늘날의 문명을 가능케 했다. 상상력은 앞으로도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키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모를 것 같은 인간의 상상력이 엉뚱한 상대에게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바로 테러리스트와 노인 방화범이다.

2001년 발생한 9ㆍ11테러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어떻게 세계 유일 슈퍼파워에다 세계 최강 방공ㆍ보안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당시에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한 보안전문가는 "9ㆍ11테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테러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미국 뉴욕 한복판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를 충돌시킨 테러는 정상적인 사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예상할 수 있는 테러는 요인 암살이나 주요 시설 폭파 정도였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이러한 예상(상상력)을 뛰어넘었다.

9ㆍ11테러와 숭례문 방화가 오버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숭례문 방화 역시 일반인의 상식과 상상력을 넘어선 사건이다. 설마 국보 1호를, 그것도 설 연휴 마지막날 나이 70에 가까운 노인이 불을 지를 줄이야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온전한 시민의 상식으로는 숭례문은 나라의 상징이자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줘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그런 숭례문이 누전이나 자연발화 등이 아닌 어느 노인의 화풀이로 처참한 몰골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상상을 뛰어넘은 방화라 해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의 책임이 감해지는 건 아니다. 숭례문은 고층빌딩도 아니고,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니고, 사방이 탁트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무려 5시간 넘게 물을 쏟아 부으면서도 불길을 못 잡은 소방당국 역시 시민들의 눈에는 의아스러울 뿐이다.

과학기술과 상호작용하며 기술진보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상상력. 이제 테러와 범죄예방을 위해서라도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히 넓혀야 할 것 같다.

[산업부 = 황국성 차장 tomas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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