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림공방 이태영 사장이 4일 윷놀이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대구=이진경 기자
민족의 명절인 설을 사흘 앞둔 4일 오전 대구 동구 불로동 두림공방. 전통 윷가락을 만드는 이곳에서는 설 대목을 맞아 나무를 자르는 기계 소음이 공방 안에 가득했다.

공방 작업실에서 만난 이태영(55) 두림공방 사장은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가 고스톱이나 컴퓨터 게임에 밀려 괄시를 받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목공예품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두림공방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윷가락 제조 공방이다. 윷놀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값싼 수입산 저질 윷에 밀려 많은 공방들이 윷가락 제작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도 이 사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윷’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 사장이 윷을 본격적으로 개발·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그는 설날이면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어렸을 적 마을대항 윷놀이판이 벌어지면 떠들썩하게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며 종종 윷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윷놀이를 할 때마다 윷가락을 찾고 윷판을 그리고, 말을 만드는 게 너무 번거로웠다. 그는 문득 ‘윷을 하나의 세트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윷과 윷판, 말이 모두 담긴 ‘윷 세트’ 개발에 매달렸다.

옛 문헌을 뒤져 ‘어른 한 뼘 길이,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 쪼개진 배면의 납작한 부분은 약간 볼록한’ 전통 윷을 복원하기 위해 애썼다. 수차례 실패해가며 윷 세트를 개발했다. 

◇나무를 윷가락 길이 정도로 자른다.또 윷가락의 옆 단면이 납작한 반타원형이 되도록 일일이 칼로 다듬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 끝에 나무 토막을 넣고 돌리면 납작한 반타원형의 윷가락이 만들어지는 기계도 직접 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윷가락은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한국관광 명품’ 인증마크를 획득하는 인정을 받았다. 이 사장은 “주변에서 나를 ‘윷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며 “나도 그 말이 싫지 않다”고 말했다. 

◇윷가락이 오래 갈 수 있도록 겉면에 왁스를 뿌린다.그는 윷놀이가 외국인과의 교류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몇 해 전 일화를 소개했다. 대구에서 열린 행사 때문에 며칠 동안 각 가정에서 외국인들이 홈스테이를 해야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어색한 상황에서 윷놀이를 가르쳐줬더니 외국인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함께 웃고 떠들다 보니 문화의 벽도 쉽게 허물 수 있었다.

이 사장은 “그 일이 있은 뒤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윷 세트를 선물로 준다”며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우리의 전통놀이를 즐기면 이것이 ‘한류’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화인 방식 대신 레이저로 원하는 글자를 새기고 있다.그는 윷놀이는 하기도 쉽고 ‘어울림’을 중심으로 하는 놀이여서 이를 되살리면 사라지는 공동체 의식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예전에는 명절이면 할아버지·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윷놀이를 즐겼다”며 “윷놀이의 쇠퇴는 공동체 문화 해체와 가족의 붕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장은 “이것이 우리가 윷놀이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강조하며 “명절에만 반짝 윷놀이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전통놀이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구=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