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작 노란장미. 오유화 화백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어려서 춤을 추고 싶어했다. 그는 4세 무렵부터 거울을 보며 혼자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을 전공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쳐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초상화 한 점에 매료돼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초상화만 15년을 그린 그의 미술계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화실에서 온종일 그림만 그리다가 결혼 직전 폐병이 걸리기도 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 사업 뒷바라지 하느라 그림 그리기에 넉넉한 여건은 아니었지만 자는 시간을 쪼개어 그림을 그리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1985년작 ‘소피아 로렌의 초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초상화가로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그였지만 미술계의 인정은 받지 못했다. 그가 그린 그림이 초상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술계에서 초상화는 동양화나 서양화에 비하면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았다. 지금이야 ‘극사실주의(슈퍼리얼리즘)’이라고 해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오 화백은 그러한 미술계의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잊지 않고 만학도의 길을 걸으면서도 꾸준히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노력과 열정은 결국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전공이나 다름없는 극사실주의 기법에 한국적인 요소들을 도입한 장생도를 통해 미술계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 최고의 미술시장인 첼시가에 자신의 그림을 걸게 된 오 화백은 이제 새로운 화가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스포츠월드 한준호 기자

? 규랑(圭琅) 오유화(吳柳和) 약력

 - 학 력

 예원예술대학교 서양화 전공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수료

 미국 PACIFIC WESTERN 대학 순수미술 명예박사 취득

 - 주요 경력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 서화작가협회 운영위원 역임

 현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회장

 - 수상 내역

 1997∼2001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회, 입선 3회

 2001 목우회 공모전 특선

 1995∼1996 신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 전시

 서울, 파리, 뉴욕, 도쿄, 중국 등에서 개인전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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