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hoto-media.hanmail.net/200708/10/chosun/20070810234501.883.0.jpg)
송희영·논설실장
국내 경기가 회복세라지만 실감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주식하는 투자자나 대기업은 좋을지 모르겠다”며 남의 일로 구경하는 분위기다.
경기 감각을 둘러싼 업종간, 계층간, 지역간, 기업간 온도 차는 어제 오늘의 화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글로벌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잘 되는 곳은 더 잘 되고, 안 되는 곳은 더 안 되는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경기 회복의 양극화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수출 대기업과 내수(內需)형 기업간의 격차를 들 수 있다. 포스코, 현대중공업,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100여 수출 대기업들은 최근 5년 사이 창업 이래 최고 호황을 맛보고 있다. 주가도 올랐고, 생산성도 좋아졌고, 임금도 올랐으며, 연구개발비 지출도 늘었다. 여유자금이 너무 쌓여 어쩔 줄 모르는 회사도 있다.
수출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나 장기 투자 같은 경영 지표들이 웬만한 다국적 기업들과 엇비슷한 수준까지 좋아졌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수출 대기업들이 만세를 부르는 반면, 다수의 내수산업은 더 위축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지방 건설업체들은 한숨뿐이다.
경기 회복의 격차는 임금 근로자들 간에도 심하다.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사이, 그리고 비정규직과 무직자·실업자 계층간의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경기 회복에 상관 없이 정규직 사원 1명에 비정규직을 4~5명 붙여주는 식으로 인사 관리를 변경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비정규직 계층은 월 수입 60만~150만원으로 일상 생활에 부대끼는 신형(新型)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주식도 없고 부동산도 없는 속칭 ‘무주공산(無株空産)’ 세력이 자리잡아가는 판이어서 경기 회복을 맛보는 숫자는 소수일 뿐이다.
게다가 지역간 격차를 보면 경기 회복의 실상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구 지역의 어느 기업인은 “대구에는 경기라는 단어조차 없다”고 불평했다. 대형 할인마트 진출로 중소도시의 유통업은 ‘멸종 위기’라고 아우성이다. 주식 활황 덕을 보는 여의도 주변이나 거대한 수출 대기업을 안고 있는 거제, 울산, 포항에서나 경기 호전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기의 양극화는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15년 장기 호황을 누리는 미국과 영국은 물론이고, 5년째 호황인 일본도 같은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호황 빌딩의 저편에 불황 마을이 거대하게 형성되는 식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경기의 양극화에는 몇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웃는 쪽은 소수고, 다수는 세계화라는 차디찬 풍파(風波)에 휩쓸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권에 진입한 다국적 기업과 그곳의 정규직 사원들, 머니 마켓에서 큰돈을 굴리는 억만장자와 투자회사들, 그리고 펀드 매니저,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들은 어디서나 승자(勝者)로 분류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이긴 자들의 잉여 이익이 낙오된 그룹에 잘 분배되지 않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출 대기업이 큰돈을 벌면 사원 채용을 늘리고, 임금도 올려주고, 새 공장을 건설하는 재투자로 나라 전체에 기분 좋은 ‘분배 파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통계를 봐도 달라졌다. 이익이 늘어도 사원은 별로 늘리지 않고, 임금 지출을 억제하고, 새 공장은 인도나 중국에 짓고 있다. 그동안 작동하던 호황의 선순환(善循環) 법칙은 깨졌고, 경기 회복의 배당금은 나눠지지 않는 셈이다.
세 번째는 경기 양극화의 속도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정부나 경제계가 좀체 손을 쓰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기가 풀리더라도 거대한 패잔병 집단은 ‘그들만의 파티’를 강 건너 불꽃놀이로 구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경기 회복의 양극화는 국민들의 불안 증상을 더 부채질할 것이 확실하다. 신입 사원들은 걸핏하면 메뚜기 튀듯 직장을 옮기고, 주부들은 적금을 깨서 부동산으로 갔다가 다시 펀드로 투자처를 돌리고 있다.
이런 집단 스트레스 때문에 국내 경기가 좋아질수록 “호황의 떡고물을 나눠 달라”는 요구는 더 강해질 것이다. 양극화 회오리 속에서 승리한 세력은 “안 되는 건 다 당신네 탓”이라고 쏘아붙이지만 말고 이런 현실에 항상 눈을 뜨고 있어야 하며, 그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송희영 논설실장]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디어 > 톡톡튀는 핫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국제 금융불안 강건너 불 아니다 (0) | 2008.02.08 |
---|---|
[사설] 미국 발 신용경색 심상치 않다 (0) | 2008.02.08 |
[이석원 칼럼] 심형래 감독과 ‘디워’는 충무로의 귀한 자산이다 (0) | 2008.02.08 |
[사설] 미국에서 울려오는 신용위기 경보 (0) | 2008.02.08 |
[사설] 요동치는 국제금융시장, 우리는 문제 없나 (0) | 2008.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