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원준 SC제일은행 금융결제팀 차장
- 화폐수집 전문가..260개국 1만여점 수집
- 수집가에서 위폐감별사로 활동

[이데일리 김수미기자] "화폐엔 `돈` 말고 `문화`와 `역사`도 들어있지요."

배원준 SC제일은행 금융결제팀 팀장(42)은 화폐 수집가다. 지난 1984년 제일은행에 입사한 이래로 23년 동안 화폐를 수집해 왔다.

▲배원준 SC제일은행 금융결제팀장

"그 때 당시엔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어요. 환전할 수 있는 통화도 딱 몇가지만 정해져 있었지요. 외국에서 여행하고 남은 돈을 환전을 못해 못쓰게 되어버리는 게 아까워 앨범에 모아둔 게 시작이었어요."

◇ 총 260개국 1만여점 수집

배 팀장이 지난 23년간 모은 화폐는 화폐발행국 기준으로 총 260개국, 1만여점에 달한다.

한국은행이 독점적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4곳의 은행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홍콩의 경우 네 종류의 달러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달러 역시 역사 순대로 `구버전`과 `신버전`을 모두 아우른다.

평소에는 SC제일은행에서 마련해 준 공간에 대륙별로 나눠 소장하다 전시가 있으면 세상에 내보인다.

◇ 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화폐수집에 대한 배 팀장의 열의는 대단하다.

배 팀장은 얼마 전 오스트리아 5000실링짜리 지폐를 구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모차르트 초상이 있는 오스트리아 5000실링 지폐를 너무 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유럽은 화폐 통합이 되어서 오스트리아 화폐는 더 이상 쓸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고액권을 구하기가 힘들고. 결국 제가 쓴 책을 들고 외국계 은행 지점에 찾아가 이 지폐를 꼭 구하고 싶다고 말을 했어요."

사정을 들은 외국계 은행 직원이 마침 본국에 연석회의 참여차 들르는 길에 지폐를 구해다 주기로 했고, 화폐 수집에 대한 배 팀장의 뜻을 읽은 해당은행 비서실 직원이 자비로 구입해 배 팀장에게 무상으로 기증했다.

돈을 구하는 것도 일이지만, 구한 돈을 한국으로 공수해오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배 팀장이 손수 모든 나라에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체코 화폐를 구하기 위해 체코 현지의 한국인 민박집에 무작정 연락을 했다.

민박집 주인이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신권을 은행에서 바로 바꿔올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체코는 신청 후 2주를 기다려야 신권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2주를 기다려 얻은 신권은 대한항공 부기장과 승무원들을 거쳐 마침내 6개월 만에 한국에 있는 배 팀장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배 팀장은 "화폐를 쉽게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도 있습니다. 돈주고 사면 되지요. 하지만 쉽게 구하면 화폐에 실려있는 인물이나 배경을 잘 모르고 그냥 수집하는 양만 늘리게 돼요. 화폐에도 다 사연이 있는데 이렇게 품을 들여 구해야 이런 정보들을 다 알 수 있습니다"며 화폐 수집에 대한 철학을 피력했다.

◇ 화폐수집가를 넘어 위폐감별 전문가로..

배 팀장은 최근 변신을 꾀했다. 화폐수집에서 위폐 감별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이다.

배 팀장은 "20년 동안 화폐를 모으다보니 뭔가 업그레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배 팀장의 업무가 원화와 외화를 총괄하는 부서인 점도 위폐 감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과거의 수집가가 위폐감별사가 된다면 나 자신은 물론 은행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환전 창구에서 생소한 화폐를 접하게 된 영업점 직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처음 보는 화폐라 환전 가능 여부를 몰라 당황하는 직원들에게 가능 여부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돈들도 동시에 판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고객 안내에도 도움이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5달러짜리를 세탁해 100달러로 위조한 케이스를 적발해 냈다. 5달러짜리를 밀어서 인물을 위조한 지폐를 감별해낸 것이다.

위폐감별기계의 경우 용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이처럼 진짜 용지에 도안만 변경했을 경우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 팀장은 "위폐 감별을 통해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특히 은행의 공신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 새 고액권 나오면 우리나라 위조 지폐 문제도 해결될 것

그는 우리나라 돈이 참 잘 만든 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돈 쓰는 습관이 화폐 제조 기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팀장은 "5만원권이나 10만원권 등 새 고액권이 나오면 지폐를 접어 쓰는 경우도 줄어 위조지폐도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돈을 빳빳하게 건네주는 서양과는 달리 지폐를 접어쓰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관이 건전한 화폐문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배 팀장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화폐 수집과 위폐 감별에 주력하는 한편 선진국 외에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 등에서 화폐를 전시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위폐를 `감별`하는 방법보다는 위페를 만들면 `안된다`는 개념을 알려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지폐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다 알 수 있는 만큼 화폐에 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고 싶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이데일리 - 1등 경제정보 멀티미디어 http://www.edaily.co.kr>
<안방에서 만나는 가장 빠른 경제뉴스ㆍ돈이 되는 재테크정보 - 이데일리TV>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