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치약 없이 양치하는 ‘광촉매 칫솔’, 손에 물 한 방울 안묻히고 밥 짓는 ‘자동취사기’, 씨앗을 서서 뿌리는 ‘파종기’….
이런 독특한 발명 특허를 50건 이상 갖고 있는 경북 포항시 최승권(45)씨. 지난해 말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의 신분은 노숙자다.
요즘은 형편이 좀 나아져 지인의 개인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지만 최근까지도 병원 로비나 기차역 등을 전전했다. 이렇게 다양한 발명품을 갖고도 노숙자 신세가 된 게 아니라 2003년 노숙자가 된 뒤 발명을 시작한, 말 그대로 ‘노숙자 발명왕’이다.
원래는 대부업계에 몸 담고 있었다. IMF 위기 직후인 2002년 파산했고, 빚독촉에 시달리다 이듬해 집마저 압류됐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빚쟁이들에게 쫓기게 된 최씨는 이 때부터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종합병원들을 돌아다니며 잠자리를 해결했고, 건설현장 막노동이나 대리운전으로 밥값을 마련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던 발명에 눈을 돌렸다.
그는 “노숙생활 중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발명품으로 이어지면 밑바닥 삶에서 나를 건져줄 수도 있다는 희망에 병원 대리석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아이디어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광촉매 칫솔’은 노숙 경험이 발명으로 연결된 대표적 사례다. 노숙생활을 하며 칫솔과 치약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닌 그는 여러차례 치약 뚜껑이 열려 옷을 더럽힌 경험에서 착안해 ‘치약이 필요없는 칫솔’을 개발했다.
칫솔모에 광촉매를 함유시키면 자외선이 뿜어져 나오고 이는 물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시 활성화산소를 만들어낸다. 이 활성화산소가 치아와 입 속에 존재하는 병원균, 박테리아, 악취 등을 분해하는 원리다.
서서 씨앗을 뿌리는 파종기는 농사 짓는 부모님을 돕고 싶어 고안한 것이다. 씨앗의 숫자와 파종 깊이까지 선 자세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최씨는 노숙생활 중 틈만 나면 대형 마트를 찾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물품을 살펴보며 개선 아이디어를 연구했다고 한다.
발명 과정엔 말로 다 못할 아픔이 많았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시제품 재료비가 없어 포기한 적은 부지기수고, 기업에서 기술설명을 위해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차비가 없어 못 간 경우마저 있었다.
나태해지기 쉬운 노숙생활 중 매일 새벽에 일어나 주유소나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발명에 매달린 결과 50여개의 발명특허를 얻게 됐다. 주로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서류 작업과 설계도면 제작을 통해 특허를 출원했고, 일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의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재료를 갖고 시제품으로 완성시켰다.
박람회나 발명전에서도 여러차례 호평을 받았다. 잇따라 발명에 성공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쉽사리 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자동취사기를 발명해 들고 찾아간 주방업체에선 “주방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획기적”이라면서도 노숙자란 신분을 꺼려 막상 상품화 계약은 회피했다. 발명품 얘기를 듣고 찾아와 도움을 주겠다던 사업가도 있었지만 그가 보유한 특허를 내세워 사업자금을 대출한 뒤 가로채려 했다.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 금상을 탄 광촉매 칫솔도 최씨의 회심작이었지만 홍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아직 투자 제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50여차례의 발명 성공과 50여차례의 상품화 실패를 겪은 그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고개를 돌린 곳은 인터넷이다.
최씨는 지난 6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치약이 필요없는 칫솔 발명한 노숙자 사연’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려 자신의 사연과 함께 발명품을 소개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광촉매 칫솔 홍보에 나선 것이다.
그는 “가난한 발명가의 발명특허는 한 점 빛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노용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