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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다음 아고라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 살아났으니 오월대도 나오라는 글과 댓글 등이 올라왔다. 과거 전대협 소속 386회원 100여 명이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깃발 아래 모였다.

조선닷컴 5월 29일 보도

80년대 학생운동 조직은 '무림'과 '학림'으로 시작했다. 80년 12월 서울대에서 일어난 시위를 수사하는 공안당국은 '무림'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이는 '안개'처럼 조직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뜻이었다. 학림은 비슷한 시기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을 만들자는 결의를 했던 조직이다.

1985년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이 수십 개 대학에 생기면서 그 하부조직인 삼민투쟁위원회가 유명해졌다. 민족·민중·민주의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뜻의 이 위원회는 삼민투로 불렸다.

이 조직이 그해 5월 미 문화원 점거사건 후 공안당국에 의해 깨지고 1986년 민민투(반제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원회)와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가 생겼다. 두 조직은 이후 국내 운동권에서 PD계열(노동운동 강조·민민투), NL계열(통일운동 강조·자민투)의 시초가 됐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당시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모임이다. 이후 1989년 임수경씨의 평양축전 참가, 1990년 범민족대회를 추진했다. 전대협은 1993년에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바뀐다.

'오월대'는 전남대의 조직이고, '녹두대'는 조선대의 운동 조직인데, 앞서 설명한 운동 조직과 성격이 다르다. 즉 시위 때 다른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화염병, 쇠파이프로 무장해 소위 '백골단'과 전경과 싸우는, 이른바 '전투 조직'의 역할이었다. 오월대나 녹두대는 다른 대학의 전투 조직보다 더 조직적이고 규율을 갖추고 있었다. 전대협 중 남부 지역 대학 모임을 뜻하는 남대협(이후 남총련)도 전투 조직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

[정성진 기자 sj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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