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예슬이 혜진이 사건' 이후에도 아동 대상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각종 치안 강화 대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일선 경찰과 전문가들은 치안인력의 확충 등 근원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같은 대책들이 구두선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여건에서 충분한 치안 인력의 확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정부 당국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제기된 경찰-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학부모 등이 연계한 예방차원의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은 '현실적인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찰을 비롯 교육부 법무부 여성부 자치단체 등이 학교 가정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모래알 같은 도시공동체를 끈끈한 커뮤니티 사회로 만들자는 취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등하교길 학부모 행렬과 경찰의 대응

예슬이 혜진이 사건과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이후 전국 각지의 초등학교와 학원가 앞에는 등하교 시간마다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치안 상태를 불안해 하는 학부모들의 필사적인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8살난 딸을 둔 이모씨(30·여)는 "자꾸 큰 일들이 펑펑 터지는데 경찰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직접 나온다"며 "결국 우리 애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치안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같은 신드롬과 악화된 여론에 주늑이 든 정부 당국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아동·부녀자 대상 범죄 종합대책'도 그 중 하나이다.

경찰은 교육청과 연계해 통학로 인근의 문방구 약국 편의점 등 8000여개 주변업소를 '안전둥지'로 지정,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경우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아동 안전지킴이 집' 제도도 도입해 운영을 시작했다.

경찰은 또 '실종전담반'을 편성해 실종사건 발생시 수사 착수시간을 24시간 이내에서 신고접수 즉시로 앞당기고 최근 3년간의 실종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했다. 실종·유괴 아동의 신속한 구조와 범인 검거를 위해 4월부터 방송과 이동통신, 인터넷업체 등 18개 기관의 인프라망을 활용해 공개 수배하는 '앰버 경보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이 시스템은 1996년 미국에서 납치 살해된 여자어린이 앰버 해거먼의 이름을 딴 것이다.

경찰은 21일 경찰의식 변화 및 현장치안역량 강화를 위해 ▲지구대 치안역량의 강화 ▲현장에 강한 실용적 수사시스템 구축 ▲성과 중심의 효율적 조직·인력 운용 ▲국민을 섬기는 경찰 구현 등을 골자로 한 6가지 쇄신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찰이 예방 기능을 강화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예방 기능은 사실상 극히 미미한 수준이기때문에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학교-가정-시민단체 등 지역사회와 경찰의 협력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아동 피해의 경우는 시민과 학교 교육부 등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경찰과 연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제는 경찰 뿐아니라 여러 유관 기관들이 함께 공조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의 경우 방어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와 부모, 경찰 등이 서로 연계해 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행정학에는 경찰의 부족한 면을 지역사회가 보충해 양질의 치안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치안서비스 공동생산'이라는 용어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경찰과 커뮤니티가 함께 해 치안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웃감시제도'라는 제도가 시행돼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제도는 1970~1980년대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순찰을 돌며 펼쳤던 자경활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영국은 1998년 '범죄와 무질서법'(Crime and Disorder Act)을 제정, 경찰과 자치단체, 소방 의료 교육기관 등이 범죄안전협력체(CDRP)를 구성해 범죄 등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 결과 법률 시행 이전인 1997년에 비해 2005년에는 절도가 39%, 폭력범죄 24%, 차량범죄가 31% 등 전체 범죄율이 25%나 줄어들었다.

국내에 이미 알려진 미국의 '학교경찰제도'는 1개교에 1명 이상의 연락경찰관을 두어 교내 안전을 책임지는 제도로 우리 경찰도 이 제도를 보완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할 방침이다.

◇국내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노력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도시시설물의 설계부터 '범죄 예방'을 반영하는 범죄예방환경설계(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범죄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을 제거하고 대피로와 동선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거리 시설물의 색상과 재질에 까지 신경 쓰는 등 도시시설물의 설계에부터 범죄 예방에 반영하는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폐쇄회로(CC)TV 수를 늘리고 자체적으로 사고예방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경기 안양시의 경우 현재 23곳에 설치돼 있는 CC TV를 11월까지 70여 곳으로 늘리고, 안양지역 개인택시기사선교회와 범죄예방위원회, 아동일시보호소, 보육원 등이 함께하는 '위기청소년안전망'을 구축, 가동에 들어갔다.

'살인의 추억'으로 알려진 경기 화성시는 46억여원을 들여 CC TV 300여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수원시도 주변의 위험 요소를 신고하는 '자율안전지킴이'와 경비전문업체 종사자를 우범지역 청소년 선도요원으로 활용하는 '안전보안관제'를 운영키로 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학교 경찰관'을 본따 우리나라에서도 퇴직한 경찰관이나 군인, 청소년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등하교지도,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펼치는 '배움터 지킴이'도 3월부터 시행중이다.

법무부도 아동 성폭행과 살해범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조,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겠다는 이른바 '혜진·예슬법'(가칭)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는 "범죄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예방"이라며 "그 첫번째 조건은 각자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한진기자 shj@newsis.com

배민욱기자 mkbae@newsis.com

김은미기자 ke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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