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에게 보고한 올해 업무계획의 주요 내용이 7개 항으로 요약되어 있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폐지, 축소, 완화 등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상호출자 금지 대상과 기업결합 신고 대상을 축소하고, 지주회사 행위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MB노믹스 실현을 위해’ 모토

이런 저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이상한 업무계획이다. 더욱 야릇한 것은 마지막 일곱째 항이다.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직권조사와 현장조사를 제한하고 통제하겠다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자아비판과 자기부정에 가까운 ‘업무계획’이다. 사람과 조직은 남지만 역할은 없애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이상하고 야릇한 업무계획의 ‘주요 내용’에는 ‘상세자료’가 첨부되어 있는데, 이를 들여다보면 혼란스러워진다. 공정거래정책을 시장친화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한다. 친기업을 표방하지는 않은 것이다. 담합행위를 철저히 감시해서 적발하고, 독과점 폐해를 적극 시정하겠다고 하면서 실천계획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상세자료의 첫 머리는 “MB노믹스 실현을 위해”로 장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은 지난 10년 동안에도 많은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1998년에 출총제를 폐지했다가 다음해 다시 도입했으며, 오랫동안 금지하던 지주회사를 허용하긴 했으나 여러 제한을 두었다. 이런 제도들은 86년에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도입되었고, 경제위기 이후에는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해 필요한 제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출총제는 여러 차례 완화되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공정위가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출총제를 완화하는 대신 순환출자만이라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공정위가 나서서 그런 제도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려 한다. “MB노믹스의 실현을 위해” 경제력 집중도 감수하고 기업지배구조개선도 단념하겠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이 불공정거래행위를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공정위가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사실이다. 공정위의 직권조사는 “법 위반 혐의가 상당하고 경쟁제한폐해 또는 소비자피해 등이 큰 경우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현장조사도 “결재권자를 상향조정하는 등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공정위가 경제력 집중 억제에는 소극적이었으나 경쟁정책에는 적극적이었다. 특히 기업의 담합을 없애기 위해 조사와 처벌을 강화했으며, 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도 나름대로 엄정했다. 그런데 지금의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를 제한과 통제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공정위에 부여된 역할을 스스로 거부하고, 공정위가 쌓아온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불공정행위 조사 제한 방침

공정위의 업무계획을 보면 조만간 공정위 조직이 대폭 축소될 것 같다. 일곱개 조항 중 세 항은 공정거래법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 조항을 삭제하면 완료되는데, 법 개정이 완료되는 즉시 그와 관련된 부서를 해체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항과 일곱째 항은 신고와 조사를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니, 이와 관련된 부서는 지금 당장 축소해도 좋을 것이다. 다섯째 항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납품단가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인데, 이는 말로 그칠 게 분명하니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공정위의 업무계획에 조직 축소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 김진방 / 인하대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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