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한국 기업들은 디자인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지만 너무나 관료적이지요. 진정한 변화나 위험에 도전하려 하지 않아요. 그러면 결국 소비자 니즈(수요)와 괴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Karim Rashid·48·사진)는 인터뷰에서 "대중에게 강력히 어필하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끊임없이 혁신하고 실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 현재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그는 17일까지 열리는 2008년 하우징브랜드페어 참석차 14일 밤 방한했다. 그는 현대카드 '더 블랙',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이자녹스 셀리언스'를 디자인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욕실 전문 기업인 새턴바스와 손을 잡고 미래형 디자인의 욕조와 세면대를 선보였다.

라시드는 "대기업이라면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해도 손해볼 일이 없다"면서 "오히려 그런 시도가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디자이너에 대해 "똑똑한데다 잘 훈련돼 있어 매우 유능하다"면서 "흠이라면 글로벌한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라시드는 "디자인은 국가나 전통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글로벌한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의 몸에는 4개국 피가 흐르고 있다. 스스로 "아일랜드와 영국, 알제리, 이집트 피가 25%씩 섞인 혼혈인"이라고 소개한 라시드는 "유럽에서 로맨틱하고 시적 영향을 받고, 중동지역에서 열정과 엔지니어적 마인드를 키웠으며 영국에선 실용과 비즈니스를 배웠다"고 했다.
해외 출장이 많은 그는 비행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또 스케치를 통해 정리한다. 라시드는 "뉴욕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100페이지짜리 스케치북 한 권을 빽빽이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라시드는 "최근 디자인 흐름은 형식에 치우친 경향이 강하다"며 "예술과 실용을 겸비한 새로운 미(美)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고령화사회를 맞아 퇴직 노령자를 위한 공간과 상품을 보다 많이 디자인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대학 시절 등록금을 벌려고 시작한 DJ활동을 지금도 가끔 즐긴다. 컬트영화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Lynch)와 공상과학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등 여전히 자유분방하다. "난 절대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요. 디자인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늘 새로운 색채와 소재를 찾아 다니지요."


[김영진 기자 helloj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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