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허물을 들춰내어 비난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클라호마 주 에니드의 조지 존 스톤은 어떤 기술 용역회사의 안전담당자였다. 그는 주로 현장 종업원들의 안전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헬멧 착용 여부를 감독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존 스톤은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종업원을 만날 때 마다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회사의 규칙을 설명하고 , 그에 따를 것을 강요했다. 그 결과 그는 종업원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그가 자리를 뜨고 나면 종업원들은 헬멧을 팽개쳐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존스톤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방법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 존 스톤은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종업원을 발견하면, 헬멧이 거추장스럽지 않은지 혹은 머리에 제대로 맞는지 등을 묻곤 하였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헬멧은 작업 중의 위험으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해주는 소중한 것이므로 좀 거추장스럽더라도 만약을 위해 항상 착용할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 결과 반항을 하거나 감정적인 거부반응은 사라지고 점점 규칙을 준수하는 종업원들이 늘게 되었다.
타인의 허물을 들춰내어 비난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 태프트 대통령과의 반목은 매우 유명하다. 그들의 마찰로 인해 두사람이 이끌던 공화당이 분열되었고, 그 결과 민주당의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등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게 된 것이다.
1908년 임기가 끝난 루즈벨트는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태프트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아프리카로 사자사냥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후 아프리카로부터 돌아온 루즈벨트는 태프트정부의 보수적인 정책에 거부반응을 보이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후 루즈벨트는 차기 대통령후보의 지명권을 획득하기 위해 진보적 제3당인 '불 무스'당을 조직하였고, 결과적으로 공화당은 분당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어째...우리나라 모 당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선거를 치른 공화당후보 태프트는 버몬트 주와 유타주에서만 지지를 받았을 뿐, 전례없는 참패를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공화당 창당 이후 가장 커다란 정치적패배였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곧바로 태프트를 질책하였다.
하지만 질책을 듣게 된 태프트가 정녕 자기 자신이 나빴다고 인정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대답들이다)
태프트는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자기자신을 변명했을 뿐이다.
이들 두 사람중에서 어느쪽이 나빴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고, 또한 누가 잘못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루즈벨트가 아무리 심하게 질책했더라도 태프트로 하여금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루즈벨트의 질책이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태프트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말만 되풀이 될 뿐이다
또 다른 사례로 티포트 돔 유전(油田)스캔들을 들어보자.
이것은 미국에서도 전례없던 커다란 독직사건으로 1920년대 초에 발생하여 수년동안이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건의 중심인물은 하딩 대통령 재임시절 내무장관을 지낸 앨버트 펄로, 그는 당시 정부소유인 티포트 돔과 엘크 힐의 유전대여에 관한 실권을 쥐고있었다. 이들 유전은 원래 해군용으로 보존하도록 되어 있는데, 펄은 이것을 대여하면서 공개입찰 절차도 거치지 않고 친구인 도헤니에게 수의계약으로 대여해줌으로써 커다란 돈벌이를 시켜주었던 것이다.
이에따라 도헤니는 이들 유전을 운영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대여금이라는 명목으로 펄 장관에게 10만달러를 융통해주었다. 그 뒤 펄 장관은 해병대를 동원하여 유전지대 부근의 군소석유업자들을 축출해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것으로 단지 엘크 힐의 석유매장량이 이웃의 유전때문에 감소할 것을 우려한 독선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강제로 내쫓긴 군소석유없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그 억울함을 법정에 호소함으로써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은 국민의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결국 이사건으로 인해 하딩대통령의 정치적생명은 끝을 맺게 되었으며 공화당은 위기에 빠져버렸고, 앨버트 펄은 투옥되었다.
이렇게 펄은 현직 관리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무거운 형을 받아싿. 그렇다고 그가 자기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를 했을까?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어느 강연회에서 하딩대통령의 하야를 재촉한 것은 측근에게 배신을 당한 정신적인 고통때문이었다고 술회하였다.(신뢰를 버린 내무장관 펄의 비리와 축재를 '정치적배신'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펄 부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팔을 내저으며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 아니 뭐라고요? 하딩이 펄에게 배신을 당했다고요? 천만에요! 내 남편은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이는 이 건물 가득히 황금을 쌓아놓고 유혹하여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양반입니다. 오히려 내 남편이 배신을 당한 것이라구요!"
( 말귀를 못알아먹은 여편네의 망언이 아니라, 심각한 자가당착, 자기최면에 걸려 있는 요즘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바 없는 소리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내무장관으로서 지켜야 할 - 미국 대통령제도에서 대통령과 내무장관의 위치를 생각해보라- 신뢰를 버리고 비리와 축재를 한 것을 '정치동료에 대한 친구이자 국가원수인 하딩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펄 장관이 밀어준 친구 도헤니 또는 자신이 군소석유업자들의 밀고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의 행위를 미화하고 남을 헐뜯으려고 드는 법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기도 하다. 인간은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악한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만약 남을 비난하고 싶어지면 크로올리나 알 카포네 그리고 펄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바란다.
남을 비난하는 것은 하늘에 대고 침을 뱉는 것과 같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태프트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말을 상대방에게 듣는 것이 고작일뿐이다.
'[WriterGeni] > 좋은글&명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상이 내 것 같을 때가 있다 - 자존심(2) (0) | 2008.02.15 |
---|---|
[스크랩] 세상이 내 것 같을 때가 있다 - 자존심(1) (0) | 2008.02.15 |
내일이면 행복해졌을 사람이 여기 잠들다 (0) | 2008.02.15 |
진정한 강함은? (0) | 2008.02.15 |
[스크랩] 내면의 샘물 (0) | 2008.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