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랄프 치오피(51)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헤지펀드 매니저였다. 22년 동안 베어스턴스에서 근무하며 그는 지난 3~4년 동안 평균 20% 수익률을 올렸다. 시중금리가 4~5%대 저금리시대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수익률이다. 이로 인해 그는 650만달러 연봉을 받는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그가 운영했던 헤지펀드가 파산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금을 빌려 늘 해오던 대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증권에 베팅했다. 그는 주택경기가 세계 경제가 좋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경제 여건은 그의 판단과는 달리 움직였다. 주택경기가 둔화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한방 먹었다. 주택가격 하락과 대출 금리 인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의 연체가 늘어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바탕으로 발행한 유동화증권의 값이 하락했고 이로 인해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그가 운영하던 펀드는 결국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베어스턴스 측은 파산에 따른 여파가 워낙 클 것으로 판단해 긴급 자금을 투입키로 하는 등 헤지펀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헤지펀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금융기관이 베어스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인 UBS도 헤지펀드 때문에 혼쭐이 났다. UBS는 지난 5월 헤지펀드 투자부문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헤지펀드 투자부문인 딜론 리드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1억5000만 스위스프랑(약 1억2400만달러) 손실을 기록함에 따라 이 사업부를 아예 폐쇄키로 한 것이다.

UBS는 헤지펀드 투자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11개월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UBS 최고 경영자는 이 사태로 인해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헤지펀드가 말썽을 일으킨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원자재 펀드인 아마란스 어드바이저는 60억달러 손실을 입었고 올해 초 몬트리올 은행도 천연가스에 투자했다가 5억6000만달러를 날렸다. 일부 헤지펀드가 금융시장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높은 레버지리를 바탕으로 고수익에 투자하는 특성 때문이다.

대개 헤지펀드들은 초기자본의 10배 이상으로 자금을 불려 투자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베어스턴스사의 2개 헤지펀드도 20억달러의 초기투자자금으로 시작해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편입된 자산담보부증권에 투자한 후 이를 담보로 10배에 달하는 2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돈을 벌 때는 엄청나게 벌게 되지만 손실이 나게 되면 10배 이상으로 깨진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헤지펀드 규모는 9000여 개에 1조5700억달러로 집계됐고 올 상반기에는 2조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헤지펀드는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세계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도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헤지펀드 허용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자본시장의 규제체계가 혁신되고 투자자의 신뢰와 시장규율의 공고화에 맞춰 헤지펀드를 도입하는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며 헤지펀드 허용을 시사했다.

하지만 최근 월가에서 보여주듯 헤지펀드 운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도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위험관리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경험과 운용 노하우가 풍부한 전문가 육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꼽고 있다. 국내에 헤지펀드 도입과 관련해 최근 월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헤지펀드들의 실패담이 헤지펀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데 좋은 연구사례가 될 것 같다.

[뉴욕 = 위정환 특파원 sunnyw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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