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와 80년대 은행주는 대중주의 대표였다. 건설 무역(상사)주와 함께 트로이카로 불렸다. 개발연대에 수출로 돈을 벌고, 건설 붐이 일던 시절이었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은행주에 묻어두었다. 지방은행에는 애향심까지 가세했다. 향토기업이나 지역 유지들이 지방은행주를 자랑스럽게 보유했다.

역시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부실 은행은 공적자금이 들어가면서 휴지조각이 됐고 이후 국내 투자자는 등을 돌렸다. 은행 경영이 정상화됐지만 정부 지분 매각 때 대부분 외국인들이 물량을 받아갔다.

부실 은행 중 제일은행 외환은행 등은 잇따라 외국 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당시 우량 은행으로 꼽혔던 국민 주택 하나은행 등은 돈이 아쉬운 기업이나 은행주에 정떨어진 개인들이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 물량 역시 외국인들이 사들였다.

신한은행은 감독 당국의 특별승인을 얻어 액면가 이하로 증자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도 신주인수권을 얹어주고야 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다.

애국심까지 가세해 신한은행 창업에 참여했던 재일동포 주주들도 머뭇거렸다. 경영진이 일본에 달려가 일일이 설득했음에도 실권한 사례도 많았다.

현재 국민 하나은행은 70~80%, 신한은 60%이상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부산 대구은행 같은 지방은행의 외국인 지분도 어느새 60%를 넘어섰다. 외환은행은 HSBC와 협상 중이라고 하니 론스타를 거쳐 또 외국계에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국민 하나 신한은행이 외국계 은행이지 무슨 국내 은행이냐." 가끔 독자들의 항의 섞인 전화를 받는다. 은행업이 외국 자본에 장악됐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많다. 국민 정서 때문에 한때 토종은행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하면서도 중립적이다. 국내 은행의 경영 전망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고 베팅한 외국인들은 배당금으로, 주가로 보상받고 있다. 2년여 동안 10조원 가까이 평가차익을 남겼다. 10조원이면 외환은행 시가총액을 넘는 규모다.

한국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현재 34% 수준으로 3년 반 사이에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은행주에 외국인 지분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점이다. 당시 외국인의 은행 지분은 61.1%였고 현재 70.09%로 10%포인트나 늘었다.

아무도 국내 기관투자가나 개인들에게 은행 주식을 사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어떤 판단이었든 안 샀을 뿐이다. 산업자본이라고 해도 국내 기업이 4%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외면했다.

이제 은행의 가치를 되돌아봤으면 한다. 얼마 전 만난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는 한국 경제를 믿고 한국의 금융 분야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큰 덕을 봤고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3년여 사이 외국인에게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시장이나 증권시장은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은행은 국가 경제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인덱스 성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개도국 시장에 투자할 때 금융 업종을 선호하는 편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더라도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은행의 강점도 많다. 글로벌 시장에서 은행이 평판이나 자기자본 규모에서 우세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증권업종 주가가 급등했지만 외국인 지분은 12% 선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 속에도 국내 펀드 자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규모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 은행은 여전히 기피 업종이다.

몇 년 전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면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것을 도와주는 꼴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나놓고 보면 난센스였다.

어느 회사의 주주가 될지 말지는 투자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과거 악몽에 얽매어 있다면 다시 5년 후 수익을 챙기기 어렵게 된다. 그때 가서도 왜 은행 주주는 대부분 외국인이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여본들 소용이 없다.

국민 신한 하나은행은 분명히 한국이라는 시장 속에 존재하는 국내 은행이다. 현 시점에서 외국인이 다주 주주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주 구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에게 다시 판단을 요구하는 시점인 것 같다. 시장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투자자들의 결정을 담아내고 이를 통해 적정 가격을 만들어갈 따름이다.

[조경엽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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