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라는 게 있다. 요즘 은행권에서 널리 자행되고 있는 대출고객에 대한 펀드 가입 강요 행위가 대표적인 꺾기 사례라고 보면 된다. 꺾기는 물론 불법이다.

대출을 받으러 온 고객의 아쉬운 처지를 빌미로 상품을 강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익원이 줄어드는 은행으로선 꺾기 유혹을 떨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은행들이 올 상반기에 펀드를 팔아 벌어들인 수수료만 1조2000억원. 대출시 펀드 판매 유혹은 마약과도 같다.

꺾기는 너무나 익숙한 금융관행이다. 권하는 측이나 권유받는 측 모두가 불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도 대출 상담 때 펀드 가입을 '은근히' 권유받은 적이 많다.

실제 주변에서 대출받은 사람 대부분은 펀드 한 개쯤은 가입해 있다. 꺾기를 당한 셈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간 꺾기 뒤지기와 숨기기 혈투가 매년 벌어지지만 승자는 늘 금융기관이었다.

'강매냐 자발이냐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변명하지만 감독당국의 마지못한 조사는 꺾기 번식에 훌륭한 면역력만 제공해왔다. 이런 감독당국의 초라한 모습은 28일에도 다시 한번 증명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개월 동안 전국 8개 은행 157개 점포를 대상으로 대출을 미끼로 펀드 가입을 강요한 사례를 조사한 결과 발표에서다. 발표는 28일 김대평 은행담당 부원장이 직접 맡았다. "조사기간에 적발된 꺾기 사례는 모두 358건이며 관련 기관, 관련자를 모두 엄중 조치하겠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서슬 퍼렇다는 금융당국이 수만 건에 이르는 3개월간 대출을 샅샅이 뒤져서 나온 꺾기가 고작 358건이라니.

또 다시 금융기관의 교묘한 숨기기에 당국이 패했음을 자인한 발표에 불과했다. 돈이 필요해 대출을 받았고,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펀드에 가입해야만 했던 수많은 서민들이 30년 금융감독에 몸담았다는 분의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은행들이 금감원 나으리에게는 감히 꺾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금감원 검사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지 혼란스럽다.

[경제부 = 장광익 기자 pal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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