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그룹. 1985년 단돈 40만달러로 시작해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최대 사모펀드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자산 670억달러로 전 세계 100여 개 기업을 집어삼켰다. 올해 초 미국에서 가장 많은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부동산 최대 기업 에쿼티 오피스 프로퍼티스를 390억달러에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한 바로 그곳이다. 마이클스토어(60억달러), TDC(120억달러), VNU(98억달러)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 모두 블랙스톤에 넘어갔다.

포천지가 최근 이 회사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월가의 새로운 왕'으로 치켜세운 것도 블랙스톤의 잠들지 않은 열정을 높이 평가해서다. 지난 6월 중국투자공사가 이런 블랙스톤 지분 10%를 샀다. 비록 의결권이 없는 지분이긴 하지만 중국 자본이 미국 최대 사모펀드를 공략한 것이다. 중국 진출을 원하는 미국 자본에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줬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반대 해석도 있다.

2005년 여름 중국 국영석유회사의 미국 캘리포니아 석유회사인 유노컬 인수가 미국 정부 반대로 무산된 후 사모펀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미국 기업을 공략해 보겠다는 중국의 전략 수정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투자공사의 블랙스톤 지분 인수는 올해 중국 자본의 국외투자 전체를 놓고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7월 중국건설은행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은행인 스탠더드뱅크 지분 20%(55억달러)를 인수해 사실상 주인이 됐다. 1694년에 설립돼 영국 금융의 역사라는 바클레이스은행(지분 3%, 30억달러)에도 중국개발은행 손길이 뻗쳤다. 시틱증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일격을 맞아 비틀대고 있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유력한 인수자로 떠올랐다.

중국 자본의 궤적은 투자라기보다 공격에 가깝다. 인수전을 펼치는 모습에서 수천 년 역사에서 목격된 중화 대륙인의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쏟아 붓는 자금 규모도 엄청나지만 공격 대상 기업들이 모두 그 나라에서는 금융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중국의 이 같은 행보를 보고 있자면 부럽기도 하다. 국내 금융자본의 안이한 경영전략과 비교해 보면 은근히 화도 난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온실 속 보호에 숨어 국내 은행들은 이자 따먹는 데만 열중했다. 전략이라곤 비싸게 대출해 주고, 싸게 예금 받는 게 고작이었다. 위험 없는 주택담보대출만 파먹다가 정부의 부동산 견제정책으로 막히자 이제는 다른 은행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빼앗아오는 일에 혈안이다.

만나는 뱅커마다 국내 시장에는 더 이상 먹을 게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뱅커도 없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너무나 따로 논다. 은행이고 증권사고 할 것 없이 이익이 조금만 나면 미래 투자는 뒷전이고 배당으로 대주주 주머니 챙겨주는 데 여념이 없다. 외국으로 나가라는 정부의 등떠밀기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 금융사 지분을 사들이기는 하나 알고 보면 우리나라 상호저축은행 정도에 불과한 곳이 많다.

지난해 5월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사겠다며 입찰서에 써넣은 금액이 70억달러(6조3346억원). 아직 결론 나지 않은 법원 판결에 HSBC까지 뛰어들면서 오리무중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국내 은행들은 외환은행을 못 먹어서 안달이다. 더 이상 국내에서 먹을 게 없다면서도 굳이 그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수를 고집하는 모습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각을 넓혀 70억달러 정도 자금이면 앞서 중국이 인수했다던 그 정도 규모 금융기관 두어 개는 충분히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제일은행을 인수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지분 13% 정도도 살 수 있다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국내만 쳐다보는 터널식 발상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세계는 넓고 신성장동력은 얼마든지 있다. 금융사들마다 속사정도 있고, 현실적으로 어려움도 있을 게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정글로 나가야 한다는 건 금융인들도 동의하는 사실 아닌가. 국내 금융사들이 정글로 나가기에는 너무나 비만하고 동맥경화가 걸린 건 아닌지 의문이다.

[경제부 = 장광익 차장 pal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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