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닦아주던 영업사원 이야기
2011. 8. 29. 월요일
오뭐시기
때는 바야흐르 2000년 중반.
지방제조업체의 특징과도 같은 "독재자 사장님"의 귀여움을 받아 초고속 승진한 26세 오뭐시기의 가슴엔 자부심과 자긍심. 그리고 어린이 특유의 객기가 섞인 자존,자만심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전직원 200여 명도 안되고 총매출 400억도 안되는 소규모 회사였지만 고졸 입사 4년만에 팀장을 달고 생산공장 서열 4위, 밑으로는 대졸 30대 대리 두명에 40,50대 반장 둘이 있었고 또, 그 밑으로는 공장근무 생산직 50여명이 있었죠.
업무는 생산현장 최고 책임자로서 하루의 일과를 스스로 결정하는 위치였고 직급에 익숙해 질 때 즈음엔 甲형님들과 업무의 연장으로 낮시간에 사우나도 다녀올 수 있는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갑형님들은 태초에 갑이시어 날 때부터 파워를 가지고 태어나사 저에게 기분에따라 술을 주시고 아랫 벤더들이 동생뻘인 저에게 굽신하여 식사 한 끼 청하면 기분좋게 들어줄 만큼 (나는 을에게 참 관대한 사람이란 말이야 후후후...)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때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4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머리숱이 부족하고 목살이 두툼한 영업사원이 회사 사무실로 찾아오게 됩니다.
저 자세로 굽신거리며 비굴함 바로 윗단계로 웃는 최대의 공손함.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블루톤 정장. 손에든 비타민음료 박스.
사무실 생활을 하면서 잡상인처럼 찾아오는 각종 영업사원들을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는 짬이라 전~혀 반갑지 않는 만남이었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런다고 "당신뭐야? 나가~" 라고 막아설 레벨은 넘어섰던 오뭐시기였었죠.
매일하는 행사 순서처럼 같이 웃으며 회의실 테이블에 앉되, 저는 객보다 조금 더 늦게 앉았으며 경리 미영씨는 생긋 웃으며 시원한 녹차를 내오고 서로의 명함을 교환합니다. 교환한 명함은 바로 지갑에 넣지않고 테이블 위에 오른쪽에 두되 자료등에 깔리지는 않게 하며 서로의 예의를 비교합니다.
(주) NK케미컬 영업부 김차장
회사는 확장일로로 잘 나갈때였고 어느 자동차업체의 강화 플라스틱 제품 납품 계약이 완료된후 라인을 증설하던 차 였습니다. 제품을 생산할 때는 매일같이 다량의 플라스틱 수지가 필요하고 김차장은 그 플라스틱 수지를 판매하러 온 것이지요.
수지 영업이고 뭐고 아예 이야기가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김과장의 NK케미컬은 유통회사이고 플라스틱수지회사 공장에서 물건을 떼어와서 판매할 뿐 자체 제조는 없었지요. 당연히 최소 월 1억5천 이상의 수지를 사용하는 계약은 세원이나 애경등의 수지 제조공장에서 바로 구매하여 쓰는게 훨씬 더 저렴할 것 이라는 것은 신입사원도 알 만한 원리입니다.
"저는 귀찮고 님은 남길 게 없는 장사니 빨리 가세요" 를 최대한 부드럽게 유화하여 예의 안에서 말했습니다만, 김차장의 좋은 언변으로 길게 이어진 편안한 대화에서 물건 이야기는 단 한번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 사람 서울에서 양산오면 톨비,기름값만해도 15만원인데 회사에서 다 정산해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틀에 한번씩 계속 와서 잡담을 하고 가는데 그게 이주일쯤 지나니 같은 회사 직원 같더군요.
나이가 어리던 많던 회사 직원 모두에게 굽신굽신 허리가 50도로 굽혀지며 대하는 자세여서 고졸 생산직 젊은이들은 '격의없이 조금은 쉽게 대해도 되는 편한 아저씨' 정도로 랭크를 매기는데 오래걸리지 않았고 얕보는 마음을 섞어 편하게 어울리다가 어느날은 퇴근후 같이 고깃집도 가더군요.
"아 오팀장님 날도 더운데 저랑 퇴근하시고 시원~한거 한잔 하시죠. 아 제가 성형기술을 오팀장님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영업일을 하면 또 기술적인 부분도 되게 중요한거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한잔 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뭐 뻔한것 아니겠습니까. 영업에 괜히 말려드는거다라는 경계심이 들었지만
계속되는 간곡한 권유로 술한잔 피할수 없게되어 제가 계산하는 조건으로 맥주 한 잔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시원하게 웃으며 좋아하시던지.
"제가 영업일 한게 15년차가 되는데 처음으로 먼저 얻어먹어 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팀장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오팀장님! 제가 반드시 더 좋게 사겠습니다. 굳이 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시원한거 생각날때 말씀만 해 주세요~"
그렇게 사원 -> 중간관리자 -> 상급관리자와의 술자리를 반복하며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상무님과도 식사를 자연스레 할 무렵, 갑형님들과의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인한 늦잠으로 지각이다! 서둘러 출근하고 상무님,과장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응? 평소에는 항상 지저분한 제 책상이 깨끗 합니다!
테이블위의 자료들은 가지런히 포개서 코너 끝에 정리되어 있고 책상위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상무님, 부장님과 웃으며 즐거운 분위기 안에 있는 김차장에 손에는 물걸레가 들려 있네요. 자기 책상을 물걸레질까지 해가며 대신 청소해 주는 것은 제 기준에선 군대에서 후임에게 시키기 힘든 그런 것 입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김차장의 물걸레질은 매일같이 이어지게 됩니다.
"아 저기. 하시는것은 뭐 상관이 없는데 제 책상은 그냥 둬 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아니 아니 제가 좋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으니 맡겨 둬 주세요. 저도 여기만 있어도 회사에서 월급은 잘 나옵니다. 손놀면 뭐하겠습니까."
저는 뭔가 불편하여 그만둬 주시기를 청하였으나 정중함을 계속 유지하며 한사코 계속하시네요.굳이 직급자가 아니더라도 신입사원같은 직원들의 책상도 깍듯이 대하며 닦아주는것이 오랜시간 반복되자 사무실사람들은 당연히 청소해 주는 사람인 줄로 알고 더욱 낮추어 보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존경스러워졌습니다. 분명히 어린애들이 함부로 대해도 웃고 계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쩐지 그때는 설명하기 힘든 무서운 느낌도 약간 느꼈었는데 사회생활 4년차 밖에 안된 시점에서 사는 것의 치열함을 조금 읽을수 있어서 그랬을까요. 그렇게 회사근처 경남 양산의 모텔에서 절반쯤 살며 계속된 김차장의 무임금 출근은 결국 결실을 보게 됩니다.
애경공장에서 배달오는 수지등의 물량조절과 배달 일정을 맞출 자재과를 만드느니 차라리 조금 비싸게 자재가 들어오더라도 N케미컬 김차장에게 조달역을 맡기는게 더 저렴할것 이라는 판단을 상무님께서 내리신 거죠.
물론 김차장과 상무님의 잦은 야간 회동도 결정에 영향을 줬을 것 입니다. 그러나 몇 달을 한 회사 직원처럼 생활하며 신뢰를 쌓아준 것 또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재 납품 계약을 가져가셨으니까요.
김차장님께 영업이란 무었인가를 참 많이 배운듯 합니다.
기꺼이 낮은자세로 인내하시는 모습에 존경심을 가지면서 어느샌가 제 회사의 이익보다는 김차장님을 응원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더랬죠. 후 일 중국출장도 같이가게 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많아져 개인적인 친분도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여러해를 지나 전 소규모 제조업계 팀장 오뭐시기는 '도저히 못참겠다, 내가 뭔가를 보여주마!' 하고 제조업 창업을 하게 됩니다.
나는 안망할꺼야. 물론 세상의 법칙대로 입니다. 어린 마음에 객기로 서울 비싼 곳에 차린 첫 창업은 거창한 꿈 대신 부채만을 남겼습니다. 이삿짐 알바로 번 돈을 아끼고 아껴서 매달 절반씩 모두 상환에 써도 이자 포함 10년여가 걸릴 정도의 부채 말입니다.
다시 몇 달이 흐른후.
술 마실 돈은 햇빛 보기 무서워 숨은 이불안에서 다 써버린 오뭐시기는 존경했던 서울의 NK케미컬 김차장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언제든 전화해 달라'는 말을 기억하며 용기내어 술한잔 청하는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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