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의사가 다문화 가정을 소재로 한 뮤지컬의 작가로 데뷔해 화제다. 분당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양혜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못다 이룬 문학소녀의 꿈이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에 녹아 있다.

국악, 뮤지컬과 만나다 지난 2006년 가을, “창극 대본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말이 시작이었다. 양혜란 교수(35)의 남편은 국립국악원 정악단 김창곤 부수석이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즐기는 아내를 유심히 본 남편의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무슨 일인지 이야기가 술술 써지는 거예요. 평소에 다문화 가정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그걸 이야기해보기로 했죠.”

대강의 줄거리를 잡고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금방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극본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소설 습작을 몇 번 한 적은 있지만 극본은 처음이었고 거기다 익숙하지 않은 창극 대본이라 더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남편이 국악인이라 국악은 자주 들었는데 대본을 창극에 알맞은 형태로 만들다 보니 장단이라든지 운율이라든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더라구요. 대사는 제가 쓰고 운율과 장단은 국립창극단 이영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남편과 여러 국악인들의 도움으로 글은 점점 창극 대본으로서의 모습을 갖춰갔다. 병원 진료에 강의, 학회까지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도 작품을 낳을 수 있었던 건 글 쓰는 즐거움 덕분이라고 한다.

“주로 집에서 글을 썼거든요. 한번 집중해서 쓰기 시작하면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어요. 바쁜 일정에 힘들었지만 정말 즐겁게 글을 썼던 시간이기도 해요.”

그렇게 태어난 ‘러브 인 아시아’는 2007년 초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공모’에 당선돼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공모전에서 받은 1천만원의 상금으로 각색을 한 번 더 하고, 여름 동안 준비해 가을에 경기도 안산에서 초연을 했다.

“남편의 제안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일단 글 쓰는 게 즐거웠고, 그래도 시작이 중요하니까 혹시나 무대에서 공연된다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러브 인 아시아’가 처음 공연됐을 때, 머릿속에서 꿈꾸던 이상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양혜란 교수는 그 누구보다 감동을 받았다. 극본을 쓴 작가로서의 감동도 있었지만 연극을 본 관객으로서도 신명나는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창극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즐거운 무대를 선보인 ‘러브 인 아시아’는 작년 안산 공연에 이어 올 4월 국립극장 무대에도 올려졌다.

“창극은 아직 대중화되기 어려운 장르예요. 영화나 뮤지컬이 있기 전만 해도 우리에게는 판소리가 대중문화였잖아요. 그게 어느 순간부터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이제는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소수의 문화가 된 것이 안타깝지만 그럴수록 창극의 대중화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국악과 뮤지컬을 합친 퓨전 창극이에요.”

작품 안에는 판소리와 뮤지컬뿐 아니라 베트남과 몽골 음악도 들어 있다. 각각의 음악들이 인물들의 상황과 심정에 맞게 표현됐는데 특히 시어머니의 한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판소리가 제 역할을 했다. 우리 정서를 살리는 데는 창만큼 좋은 것이 없다.

“판소리 작창은 이영태 선생님이 해주셨어요. 여러 인물들의 갈등과 긴장감을 국악이 정말 효과적으로 표현했죠. 작품 속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그렇듯 여러 국적의 음악들도 하나하나 조화롭게 섞였어요. 그냥 연극으로 풀었으면 정말 진지하고 어려웠을 텐데, 창극이 흥을 살렸죠.”

문학소녀에서 의학도, 다시 작가로 양혜란 교수는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다. 별명도 책벌레였다. 그래도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연극 한 편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 극단의 연극이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작가로서의 유혹을 느꼈죠. 그때부터 조금씩 습작도 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이미 이과로 진학을 결정한 상태에서 문과로 바꿔볼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결국 의대에 입학을 했지만 공부와 시험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실제로 인턴 끝나고 1년 정도 쉬었어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었죠. 1년 동안 쉬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글도 쓰고. 작가로 전향을 할지 고민도 했는데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소설로는 만족을 못할 것 같더라구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하고 싶은 것 말고 잘하는 것도 하자’였다. 그렇게 의사가 되고 남편을 만나 행복을 느끼면서 글에 대한 욕심은 서서히 줄어드는 듯했다.

“그래도 가끔 제가 글 쓰는 걸 그리워하니까 남편이 잘 알아줬던 것 같아요.” ‘러브 인 아시아’도 남편의 외조가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양 교수의 표정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부부는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의사와 국악인, 언뜻 생각하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 직업이지만 두 사람 모두 첫눈에 반해서 세 번째 만난 날 남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결혼에 골인한 건 100일 만이었다.

“결혼식을 국악원에서 했어요. 남편이 ‘춘향전’의 사랑가에 제 이름을 넣어서 불러줬는데 너무 행복했죠. 편지도 써서 읽어주고, 그렇게 결혼식 때부터 지금까지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요즘엔 초등학교 1, 2학년 두 딸과 함께 ‘러브 인 아시아’ 연습실도 가고 리허설도 본다. 바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데,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가 최고’라며 언제나 엄지손가락을 들어준다. 우리 가족이 행복한 것처럼 다문화 가정도 행복했으면 하는 게 바람, ‘러브 인 아시아’가 태어나게 된 계기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러브 인 아시아’는 한국에 시집온 아시아 지역의 며느리들과 전통을 고수하는 시어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글이라는 것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태어나는 것인 만큼 ‘러브 인 아시아’에도 양혜란 교수가 겪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경험이 녹아 있다.

“어렸을 때 옆집이 다문화 가정이었어요.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셨죠. 그 집 딸들이랑 친했거든요. 그때 처음 중국어나 중국 문화를 접했어요.”

두 딸도 어렸을 때 조선족 아주머니가 돌봐주셨다. 아이들이 자란 후에는 일을 그만두셨지만 그분과도 이런저런 추억이 많다.

“조선족분들은 대부분 한국에 올 때 가족이나 친지들이랑 같이 들어오시더라구요. 아주머니도 조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는데 시골로 시집간 조카가 남편 폭력 때문에 도망 나와 한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지냈어요. 한국으로 시집와 남편 폭력에 고통받은 조선족, 동남아 신부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제 주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대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의 특성상 병원에서 진료를 할 때도 다문화 가족을 많이 만난다. 영어권이 아닌 제3세계 국가에서 온 가족들은 병원에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아이가 아파 병원에 온 경우는 아이의 상태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 더 애가 탄다. 언어의 벽에서 오는 소통의 단절은 양 교수가 가장 많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병원에 오게 되면 많이 답답해하세요. 우리도 아이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안타깝구요. 아직 병원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통역은 쉽지 않거든요. 제3세계 언어를 쓰는 분들도 신속하게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다문화 가정이라면 여전히 선을 긋고 벽 너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문화 가정에 대해 사람들이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문제’로 느꼈으면 하는 것이 양 교수의 바람이다. ‘러브 인 아시아’도 그런 바람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어둡고 우울한 내용일 거라고 오해하세요. 신문이나 뉴스에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눈높이를 다문화 가정에 맞췄을 뿐이지 ‘러브 인 아시아’는 우리와 같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예요.”

작품에는 싸우는 장면이 없다. 갈등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갈등을 해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곳곳에 숨겨져 있긴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낄 정도다. 편견을 버리고 공연을 즐기다 보면 마지막에는 신명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선입견 없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시는 분들이 즐겁다, 재밌다고 느끼면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만큼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함께 나누는 행복, 소통과 이해의 의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밝게 좀 더 따뜻하게 우리 이웃의 모습을 바라보면 행복한 우리의 모습도 한 발짝 가까워질 것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주석
아이디어의 보물섬! 한국아이디어클럽(www.idea-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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