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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인문학에 빠진 국내외 CEO들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중세가 르네상스로 이행한 것에서 디지털시대의 도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일본에서 ‘CEO가 존경하는 리더’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씨는 1959년 27세의 나이로 ‘교토세라믹’(훗날의 교세라)을 창업했다. 창업 3년째의 어느 날 고졸사원 11명이 혈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와 임금과 장래 보장을 요구했다.
이나모리 씨는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마당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가 3일 동안 “자네들을 배반한다면 그때는 나를 죽여도 좋다”고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이나모리 씨는 기업 경영은 단순히 자신의 기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직원과 사회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전 직원의 물심양면에 걸친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기업의 사명(使命)을 발표했다.
김호인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교세라의 기업 이념은 불교(자비·慈悲)와 유교(경천애인·敬天愛人)에 기반을 둔 것으로, 종교와 철학사상을 경영에 반영한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국내외 경영계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대가 지난해 가을 개설한 인문학 과정 AFP(Ad Fontes Program)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기 모집 때 경쟁률이 너무 높아 쟁쟁한 기업을 이끄는 기업인도 탈락했을 정도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월례조찬 특강인 ‘메디치21’에는 매달 600명 이상이 참석해 역사 문화 미술을 배운다.
인문학 열풍은 해외에서도 거세다. 세계적 명성의 스페인 엠프레사(Empresa) 경영대학원은 신입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인문학 강의를 듣게 한다. 구글은 지난해 학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하버드경영대학원 졸업생을 특별 채용하기로 했다.
○ 복잡해진 경영환경 단편적 지식보단 종합적 사고 요구
인문학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기업 경영 환경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세계 경제가 급속히 글로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점점 더 단편적 지식보다는 인문학의 종합적인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문학은 상상력의 원천이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기술적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어디서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지식을 연결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인문학적 지식과 가치를 이용해 성공을 이뤄낸 기업이나 기업인의 사례는 이미 무척 많다.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은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는 “나는 경제학이 아니라 중세 철학에서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력을 키웠다”며 “중세가 르네상스 시대로 이행한 것에서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젊은 시절 인도에서 수행했으며, 그의 창의력 중 많은 부분이 종교적 직관에서 나왔다. ‘책벌레’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인문학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있을 수 없다”며 기업경영에 있어 인문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 국내서도 성적 좋은 CEO들 인문학 내공 깊어
인문학적 지식을 제품에 직접 반영해 좋은 효과를 얻는 사례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제품이나 브랜드에 멋진 이야기를 입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멋진 디자인이나 품질보다 훨씬 매력적인 속성이 된다.
불가리(Bvlgari)는 스토리텔링 기법의 일환으로 유명 소설가인 페이 웰던에게 ‘불가리 커넥션’이란 소설을 쓰게 했다. 책 표지에는 불가리 목걸이가 인쇄돼 있고, 이 목걸이는 소설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리스 여신 헤라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목욕을 했다는 샘물의 이름을 딴 ‘카타노 크림’을 내놓기도 했다.
흑백논리가 아니라 상반된 존재들의 공존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조직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몇 년 전부터 활발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의 김찬모 박사는 “현장조직에서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비용 증가를 수반하는 미래 트렌드 연구소 등 혁신조직을 함께 운영하는 ‘양손잡이형(ambidextrous) 조직’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지식은 화려하고 흡인력 있는 언변과 부드러운 대화를 도와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기도 하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역사적 사례로 연설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중견 건설회사인 우림건설은 ‘독서경영’을 경영자와 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 회사의 심영섭 회장은 매달 700권의 책을 자신의 서평과 함께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직원들은 매달 월례조회에서 독후감을 발표하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상은 물론 회사나 동료, 선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까지 전달한다.
한편 해외에 비해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의 인문학적 지식 활용이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의 경우 인문학을 전공한 주요 기업 CEO의 비율이 조사에 따라 15∼38%나 되는 반면 국내 500대 기업 CEO 512명 중 인문학 전공자는 24명밖에 되지 않는다(월간 CEO 2007년 8월호).
배보경 KAIST 테크노경영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서구 기업들을 따라잡느라 근원적인 것들을 연구할 여유가 없었다”며 “벤치마크 대상이 없어진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등에서 나온 혜안과 통찰력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성과가 좋은 기업의 CEO들은 인문학적 내공이 상당히 깊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김아연 정보검색사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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