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는 개발팀장 손은 공장장이고 발은 영업부장

식품제조회사인 해누리와 휴대폰 운영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케이마루.

업종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사실 이 두 회사는 상당히 닮았다. 두 회사 대표 모두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후 '1인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것.

약사 출신 정정례 해누리 대표는 '음식이 약'이라는 생각에서 냄새 없는 청국장 잼을 개발해 사업화했고, 배준현 케이마루 대표는 10년간 휴대폰 개발회사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창업했다.

배씨는 "1인 기업에는 혼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엄청히 높다"며 "하지만 그만큼 일에 대한 보람과 만족도도 커졌다"고 말했다.

공기정화시스템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인테리나의 최규식 대표(51). 미국 신시네티대학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고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최씨는 미국보다 한국의 공기 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귀국해 1인 기업을 설립했다.

1인 기업 시대가 열린다. '1인 기업'이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전문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개인 기업을 뜻한다.

◆ 나홀로 기업이지만 수입은 짭짤

= 케이마루의 지난해 매출액은 6500만원. 지난해 9월 창업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3개월간 올린 매출이다. 케이마루 대표 배준현 씨(37)는 "휴대폰 개발회사에서 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다"며 "휴대폰 소프트웨어는 앞으로도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판단해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씨는 "이미 1200만원가량의 계약을 체결해 올해는 1억원 정도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1인 사업자에 비해 1인 기업이 세무ㆍ노무ㆍ행정상 규제가 많아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보기술(IT) 서비스 관련 기술 개발 회사인 제이로고스의 매출은 3억원. 이 회사 이정우 대표는 "처음 창업했을 때는 대기업처럼 분야별로 나눠져 있지 않아 혼자서 너무 큰 부담을 느꼈다"며 "지금은 회사 규모가 커져 직원도 3명이나 채용했다"고 말했다.

제이로고스처럼 1인 기업은 창업자가 자신의 고용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높다.

◆ 새 일자리 창출 효과 높아

= 중기청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1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1인 기업 창업으로 인해 3만3000개 새 일자리가 창출됐다. 한국은 2006년 기준으로 1만9000개의 1인 기업이 만들어졌다. 한국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창업 열기는 뜨겁다. 일본은 2003년 2월부터 최저자본금 특례제도를 실시해 법인 설립시 주식회사는 1000만엔 이상 등의 최저자본금 규제를 받지 않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상징적인 자본인 단 1엔만 가지고도 회사 설립이 가능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신규 회사가 2만6000여 개 설립됐고 창업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중기청 관계자는 "일본은 창업 열기가 높아지면서 일자리가 많이 생기자 2005년 신회사법을 제정하면서 최저자본금 규정 자체를 삭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독일은 장기실업자 구제 대책으로 1인 기업(Ich AG)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실업자인 개인이 창업해 총연간소득이 2만5000유로 이하이면 매월 600유로의 창업보조기금을 지원하는 제도. 이로 인해 독일에서는 한 해 30만여 명이 1인 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의 1인 기업 제도는 직업 경험이 많지 않고 전문지식이 없는 실업자들이 보조금을 노리고 창업해 단기간에 파산하는 등 부작용도 생겨났다.

◆ 1인 기업 활성화해야

= 현재 정부는 1인 기업 활성화를 위해 기업 설립의 필수 요소인 5000만원 최저자본금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중기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수준인 낙후된 창업절차와 창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추진계획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중기청은 최저자본금제 폐지와 감사선임 면제 등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또 주부나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1인 기업 창업 촉진을 위해 디자인ㆍ소프트웨어 등 지식서비스 업종별로 전문 유휴 인력 풀(Pool)을 구성할 예정이다.

한편 중기청은 실험실 창업 등 교수나 연구원 등의 휴ㆍ겸직 창업이 둔화되고 있어 이를 촉진하기 위한 대학ㆍ연구기관 창업 전용 연구개발자금이나 신기술 펀드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 '냄새없는 청국장 잼' 정정례 해누리 대표 "몸이 열개라면…"

청국장으로 잼을 만드는 정정례 해누리 대표는 몸이 열 개다. 식품 개발에서부터 제조 홍보 판매 애프터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정씨가 꾸리고 있는 식품제조업체 해누리가 이른바 '1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 발명이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상용화되는 기회가 많아야 산업이 발전하고 나라도 좋아지죠."

그가 1인 기업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 '냄새 안 나는 청국장 잼'을 발명해 한국여성발명품 박람회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은 것이다. 이 소식에 주변 지인들의 권유가 쏟아졌단다.

두 달 만에 마음을 고쳐먹고 7월에 개인사업자로 등록했고 아이템이 곧 신기술보육사업으로 선정돼 11월엔 법인으로 이어졌다.

그 어렵다는 창업을 혼자 해도 승산이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소규모예요. 잼 한 병에 5000원인데…. 지난해 11월과 12월 매출액이 각각 150만원, 200만원이지요. 하지만 한 번 맛보신 고객들이 다시 주문하고 계시고 조만간 초ㆍ중ㆍ고등학교와 공급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어서 매우 희망적입니다. 올해 매출을 기대해 주세요."

혼자서도 척척 해낼 수 있는 힘은 그의 풍부한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정씨는 11년간 약사로 활동하면서 독특한 발명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현재 여성발명가협회 대구ㆍ경북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좋은 음식으로 병도 고칠 수 있다. 약이 음식이고,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그의 철학의 방증이다.

하지만 사업은 달랐다. "약국과 집만 오가던 사람이 막상 창업을 하니 힘든 일, 걸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장비나 시설도 직접 장만해야 했고 인적 네트워크가 없다 보니 발로 뛰는 마케팅을 해야 했죠. 상품 인지도가 낮아 초기 매출도 낮았어요. 회사를 운용해 나갈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된 거죠."

사회 경험이 별로 없는 창업자인지라 사업이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움츠러들기도 했단다. 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주부 고객과 급식센터 담당자들을 접하면서 차츰 자세를 바꿔나갔다.

정씨가 정부에 획기적인 맞춤형 지원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에 잘 보이는 부분에서만 여기저기 조금씩 지원을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죠. 아이디어가 좋고 획기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좀 더 확실히 지원해 주셨으면 해요. 예를 들어 지난해 여성발명가협회에 당선된 달걀 포장기계를 개발했는데 조형 비용으로 꼭 300만원 정도만 지원받았어요. 하지만 실제 기계값은 500만원이었지요. 시장 조사를 벌여 현실성 있는 지원을 해야 합니다."

[특별취재팀 = 연기홍 팀장 / 김철수 기자 / 이상덕 기자 /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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