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록 칼럼니스트] 펀드런(fund run)이란 말이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펀드로 돈을 찾으러 몰려 간다는 뜻으로 일종의 대량 환매를 간단하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자체의 용어사용을 나무랄 이유는 없지만 뱅크런(bank run)과 대비해서 명확한 차이점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뱅크런은 은행의 부분지급준비금 제도 때문

뱅크런은 사람들이 은행으로 가능한 빨리,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달려가 돈을 인출하려는 것이다. 뱅크런은 은행으로 그냥 달려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은행은 부분지급준비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만일 은행이 부도가 날 우려가 있을 때는 먼저 달려가서 돈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이러한 뱅크런은 멀쩡한 은행도 부도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한 때 미국에는 은행을 마음대로 만들다 보니 다반사로 부도가 발생했는데, 한 은행의 뱅크런에 대한 대처사례는 뱅크런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이 은행의 상급자는 사람들이 돈을 찾으러 떼를 지어 몰려오자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사람들이 보게끔 창구에 돈을 다발로 쌓아 놓아라. 그리고 예금 인출자에게 당신 예금은 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한 뒤, 인출을 매우 천천히 해줘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은 앞사람들이 돈을 문제없이 받아가는 것을 보고, 오래 기다리다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그 은행은 파산을 넘겼다고 한다.

뱅크런이란 바로 이런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은행이 브로커나 아닌 딜러(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호가하고, 스프레드를 수취하는 것)이면서 부분지급준비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펀드런은 장부가 펀드인 MMF에서 적합한 용어

펀드런이란 용어는 야후를 검색해도, 위키디피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에서 만들어진 용어는 아닌 것 같다. 사실 펀드런은 필자가 MMF의 대량 인출사태에 관해 글을 쓸 때 나름대로 처음으로 써보았다.

그 당시 MMF는 장부가격으로 평가하였다. 듀레이션도 초창기에는 0.8을 넘어서기도 할 정도였다. 듀레이션 0.8에 금리가 1%오르면 해당 펀드는 약 0.8%의 손실이 난다. 그래서 장부가 펀드인 MMF는 금리가 급등하게 되면 펀드의 명목가격(장부가격)과 실제 보유한 유가증권의 현재가치와 괴리가 발생한다.

앞의 예에 따르면 MMF의 실제가치가 0.8% 하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MMF를 인출할 때는 장부가격으로 인출해준다. 만일 사람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이 펀드를 인출해준다고 하면 99.2%의 사람들은 장부가격으로 받아가게 되나, 늦게 오는 0.8%의 사람들은 한 푼도 못 받게 된다. 혹은 이를 우려한 운용사는 0.8%의 괴리를 빨리 평가에 반영하여 MMF의 매도 가격을 낮추어버릴 수도 있다. 이 두 경우를 모두 예상하는 시장 참가자들은 결국 MMF를 먼저 인출하러 달려가게 된다.

MMF의 이러한 시스템은 은행의 부분지급준비금제도와 흡사하다. 그래서 그 당시 필자는 MMF 사태를 분석하면서 펀드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시가 펀드는 먼저 달려가는 이점이 없음

시가 펀드는 먼저 달려가는 이점이 없다(다만 어떤 펀드에 편입된 자산이 유동성이 아주 부족한 것들만 가득 채워져 있다면 먼저 달려가는 것이 이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펀드인출을 위해 달려가는 것은 부분지급준비금제도라서 먼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시장의 전망을 예상하여 돈을 인출하는 것이다. 즉 자산의 배분을 다르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MMF 펀드런’과 ‘뱅크런’은 개념이 같아도, 시가평가 펀드의 펀드런과 뱅크런은 그 본질적 동질감이 없다. 시가평가 펀드는 펀드런 보다는 대량 환매요구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언어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면 그냥 그렇게 사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용어사용에 대해 굳이 딴지를 걸 이유는 없다. 다만 펀드런을 외국에 가서 사용하면 잘 못 알아 들을 수도 있다는 것과, 사용하더라도 뱅크런과는 이런 본질적 차이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펀드런이라는 용어는, 펀드를 인출하러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뛰어가야겠다는 쓸데없는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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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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