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지난달 30일 유진그룹 자금팀은 모처럼 만에 긴장의 끈을 풀고 조촐한 저녁 모임을 가졌다.

직원들은 연일 밤샘 작업으로 지친 동료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앞으로 더 잘해보자’며 건배를 외쳤다고 한다.

유진그룹은 이날 하이마트 인수대금 1조9500억 원을 성공적으로 납입하고 하이마트를 계열사로 편입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12월 9일 하이마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50여 일 만이다.》

유진은 2004년 고려시멘트를 시작으로 2007년 로젠택배, 한국GW물류, 한국통운, 서울증권, 하이마트를 잇달아 인수합병(M&A)해 일약 M&A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1969년 군납 건빵 식품회사로 출발한 유진이 M&A를 통해 물류, 유통, 금융, 건설소재 등으로 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된 셈이다.

하지만 유진의 M&A 전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질적인 기업들을 한꺼번에 인수한 만큼 ‘통합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

지금까지 유진의 M&A 행보는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모회사 격인 유진기업 주가는 이달 1일 현재 1만100원으로, 2004년 1월 4일 고려시멘트 인수 때의 주가(2000원) 및 지난해 3월 30일 서울증권 인수 당시 주가(7210원)와 비교해 상승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진의 M&A 행보가 비교적 무난한 원인으로 ‘점령군’과 ‘피인수자’ 간의 기세 싸움이 거의 없었던 점을 우선 꼽는다. 실제로 유진은 합병한 기업의 경영진을 대부분 유임시켰고, 종업원에 대한 구조조정도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에는 ‘같은 식구는 믿고 지원하라’는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이 작용한 결과다.

유진이 2004년 고려시멘트를 인수할 때도 관련 업계에선 ‘건설-시멘트-레미콘’의 수직관계를 들어 레미콘 회사인 유진의 고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유 회장은 고려시멘트 인수 후 기존 경영체제를 모두 인정했고, 2명의 본사 실무자만 파견해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맡게 했다.

고희택 고려시멘트 인사총무팀장은 “지금도 유진 로고가 회사 정문에 붙어 있는 것만 빼고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합병 후 통합의 중요성’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인 AT커니에 따르면 M&A 실패는 협상 전 단계(30%)나 협상 중(17%)일 때보다 M&A 이후(53%)에 더 많이 발생한다.

유진은 지난해 3월 서울증권을 인수한 직후 한 달 만에 비전 선포식을 갖고 ‘현 체제 신뢰를 통한 업종 내 7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재빨리 제시했다. 서울증권의 대주주가 바뀌었지만 공통의 비전을 통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인 좋은 예다.

하이마트 선종구 대표는 유진하이마트홀딩스 증자에 참여해 전환상환우선주 900억 원어치를 인수함으로써 합병 이후 통합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유진이 합병 이후 지속적인 사내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경영비전 공유에 좀 더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 조봉순 교수는 “유진이 고용보장을 전제로 M&A를 추진하면서 당장은 반발이 없어 보이지만, 피인수기업의 종업원은 항상 불안감을 갖기 마련”이라며 “전 계열사를 포괄하는 경영 비전과 회사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공유하는 등 피인수기업을 껴안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내 손안의 뉴스 동아 모바일 401 + 네이트, 매직n, ez-i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cent posts